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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파트 정원은 아직 인프라가 되지 못했는가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는 대부분 정원이 있다. 나무와 화단, 산책로, 조형물까지 갖춘 곳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파트 정원을 공공 인프라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원은 여전히 ‘부대시설’, ‘조경’, ‘미관 요소’로 분류된다. 이는 정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원이 어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는가의 문제다.
공공 인프라란 단순히 존재하는 시설이 아니다. 공공 인프라는 시민의 일상을 지탱하고, 없어지면 삶의 질이 분명히 떨어지는 기반 시설이다. 도로, 상하수도, 학교, 공원처럼 말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아파트 정원이 이 범주에 들기 위해서는, 정원이 단지를 예쁘게 만드는 기능을 넘어 생활을 유지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남는 공간에서 중심 공간으로서의 정원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아파트 정원이 공공 인프라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원이 늘 설계의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동 배치와 주차장, 상가, 커뮤니티 시설이 먼저 정해지고, 그 사이에 남은 공간이 정원이 된다.
공공 인프라로서의 정원은 이 순서를 뒤집어야 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정원은 단지의 가장 중심적인 동선에 위치하고,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이 반드시 정원을 통과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싱가포르 HDB 단지에서 정원이 생활 동선의 중심에 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원이 단지의 ‘가운데’에 있을 때, 정원은 선택적 공간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일상 공간이 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관람형 정원에서 체류형 정원으로 전환할 것
현재 대부분의 아파트 정원은 보는 공간이다. 잔디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 식물 보호를 이유로 한 접근 제한, 짧은 산책로 위주의 설계는 정원을 통과 공간으로 만든다.
공공 인프라는 체류를 전제로 한다. 사람들이 앉고, 머물고, 반복적으로 이용해야 인프라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그늘, 앉을 수 있는 다양한 높이의 좌석, 장기간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는 환경이 필수적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것은 인프라가 아니라 장식물에 가깝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관리의 외주화를 넘어 ‘공공 관리 체계’를 구축할 것
아파트 정원 관리의 대부분은 외주 용역에 맡겨진다. 이는 효율적이지만, 정원을 주민과 분리된 대상으로 만든다. 정원은 관리되는 대상이지, 함께 사용하는 자산이 되지 못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공공 인프라 정원은 관리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 전문 관리가 기본이 되되,
주민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 사용과 관리에 대한 정보 공유, 정원 운영에 대한 의견 수렴 구조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싱가포르 HDB 정원이 관리형이면서도 공공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관리가 통제 수단이 아니라 이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정원을 ‘재산 가치’가 아니라 ‘생활 기능’으로 평가할 것
한국 아파트에서 정원은 종종 자산 가치와 연결된다. 조경이 좋아서 집값이 오른다는 논리는 정원을 부동산의 부속물로 만든다. 이 관점에서는 정원의 성과가 가격 상승으로만 측정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공공 인프라는 가격이 아니라 기능으로 평가된다.
정원이 아이들의 일상 놀이 공간이 되는가, 노인의 산책과 휴식에 기여하는가, 주민 간 관계 형성의 매개가 되는가와 같은 질문이
먼저 와야 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이 자산이 아니라 생활 장치로 평가될 때, 비로소 공공 인프라의 위치를 얻을 수 있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정원 사용에 대한 ‘권리’를 명확히 할 것
아파트 정원은 공용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제한이 붙는다. 소리, 활동, 체류 시간, 행사는 종종 통제 대상이 된다. 이는 분쟁을 줄이기 위한 조치이지만, 동시에 정원을 소극적 공간으로 만든다.
공공 인프라는 시민의 권리를 전제로 한다. 아파트 정원이 공공 인프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이 허용되는지, 어떤 사용이 정당 한 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정원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규칙 때문에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어린이·노인·비생산적 시간을 중심에 둘 것
공공 인프라는 생산성이 낮은 시간과 사람을 보호한다. 학교, 공원, 도서관이 그렇다. 아파트 정원 역시 가장 약한 사용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어린이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가, 노인이 앉아 쉬고 반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인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정원은 공공 인프라가 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이 운동 시설이나 이벤트 공간에만 치중될 경우, 정원은 다시 특정 활동을 위한 시설로 축소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단지 내부를 넘어 도시와 연결될 것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아파트 정원이 단지 내부에만 머물면, 공공성은 제한적이다. 공공 인프라는 네트워크를 이룬다.
생활권 공원, 보행로, 하천, 학교와 연결되는 정원은 단지를 넘어 도시의 일부가 된다. 이때 정원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도시 생활을 지탱하는 녹색 인프라로 기능한다.
정원 사회학에서는 정원이 외부와 단절될수록, 그 정원은 인프라가 아니라 폐쇄된 조경이 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공간 전환: 정원을 ‘여유의 상징’에서 ‘기본 조건’으로 재정의할 것
마지막 조건은 인식의 전환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을 여유 있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보는 한, 아파트 정원은 공공 인프라가 될 수 없다.
정원은 쉼을 제공하는 공간, 기후를 완충하는 공간, 관계를 중재하는 공간으로서 도시 생활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이 기능을 사회가 인정할 때, 정원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 기반 시설로 재위치 된다.
결론: 아파트 정원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아파트 정원을 공공 인프라로 만드는 것은 주민의 취향이나 관리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설계, 제도, 운영, 인식의 문제다.
정원이 중심에 놓이고, 체류가 허용되며, 권리가 보장되고, 생활 기능으로 평가될 때, 아파트 정원은 비로소 공공 인프라가 된다.
아파트 사회에서 정원은 더 이상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다. 정원은 고밀 주거가 인간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아파트 사회를 어디까지 감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같다.
하버드 가든스(Harbord Gardens)에 대하여
― ‘잘 꾸민 조경’이 아니라 ‘관계가 자라는 정원’
하버드 가든스는 무엇이 다른가
하버드 가든스는 런던의 주거 밀집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또는 주거 블록) 내 공동 정원 사례로, 화려한 디자인이나 대규모 면적보다는 주민 참여와 일상성으로 주목받는다. 이 정원의 핵심은 “정원이 얼마나 예쁜가”가 아니라, 정원이 주민의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가에 있다.
영국의 주거 문화에서는 오래전부터 ‘에스테이트 가든(Estate Garden)’ 혹은 ‘코트야드 가든(Courtyard Garden)’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데, 하버드 가든스는 이 전통을 현대적 공동체 정원으로 재해석한 사례다.
조성 배경: 방치된 공간에서 공동 자산으로
하버드 가든스가 처음부터 잘 계획된 정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공간은 한때 관리가 느슨해진 공용 외부 공간, 즉 누구의 것도 아닌 장소에 가까웠다.
전환의 계기는 주민 문제의식이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공간이 부족하고 노인들이 머물며 대화할 장소가 없고 단지 내 관계가 느슨해지는 상황이 겹치면서, 주민들은 이 공간을 ‘조경’이 아니라 공동 자산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하버드 가든스는 전문가 주도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는 정원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공간 구성: 작지만 촘촘한 생활형 정원
하버드 가든스는 넓지 않다. 그러나 공간 활용은 매우 밀도 있다.
중앙 잔디 또는 다목적 화단. 소규모 텃밭 구획, 벤치와 테이블이 결합된 휴식 공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동선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요소가 생활 동선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이다. 주민은 일부러 정원을 ‘찾아가지’ 않는다. 집을 나서고, 귀가하고,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정원을 지나게 된다. 이 구조가 정원을 일상으로 만든다.
운영 방식: 참여가 전제된 관리
하버드 가든스의 가장 큰 특징은 운영 구조다.
기본적인 안전·시설 관리는 공공 또는 관리 주체가 맡되 식재, 텃밭, 소규모 개선은 주민이 직접 참여한다.
정기적인 가드닝 데이(gardening day), 계절별 식재 활동, 수확 나눔 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참여는 강제가 아니라 열려 있는 선택지로 제공되며, 이 느슨함이 오히려 지속성을 만든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누군가의 취미 공간이 아니라, 함께 유지하는 인프라로 작동한다.
왜 ‘좋은 아파트 정원’으로 평가되는가
하버드 가든스가 좋은 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원이 관계를 만든다
이 정원에서는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보다 “정원에서 서로를 만나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러운 인사, 짧은 대화, 공동 작업이 반복되며 약한 공동체(weak community)가 형성된다.
정원이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다
정원 활동은 의무가 아니며, 참여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그러나 정원이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주민은 원할 때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
정원이 자산이 아니라 권리로 인식된다
하버드 가든스는 집값을 올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거주자의 생활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인식 차이가 정원의 성격을 결정한다.
한국 아파트 정원과의 결정적 차이
한국 아파트의 정원은 대체로 관리 외주, 관람 중심, 민원 회피형 설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하버스 가든스는 참여 전제, 체류 중심, 관계 형성 허용이라는 점에서 출발부터 다르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면 이는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운영 철학의 차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하버드 가든스는 한국 아파트 정원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원을 정말 ‘사용해도 되는 공간’으로 설계했는가
주민이 개입할 여지를 처음부터 남겨두었는가
정원이 단지의 중심 동선에 놓여 있는가
정원이 관리 대상이 아니라, 함께 유지하는 자산으로 인식되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아파트 정원은 조경을 넘어 공공 인프라가 된다.
맺은 말: 하버드 가든스가 보여주는 정원의 본질
하버드 가든스는 특별한 기술이나 큰 예산으로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다. 이 정원의 가치는 사람을 중심에 둔 설계와 운영에서 나온다.
이 사례는 말해준다.
아파트 정원은 크지 않아도 되고,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정원이 사람의 일상과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열려 있는가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하버드 가든스는 정원이 공공 인프라가 될 수 있음을,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증명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