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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으로 본 정원 노동: AI가 포착하지 못하는 돌봄과 시간

📑 목차

    정원에서 흙을 만지는 순간, 시간은 멈추지 않고도 느려진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그 반복적인 노동은 생산성의 잣대가 아니라 돌봄의 리듬이다. AI 시대에 우리는 정원을 자동화된 완벽한 기계로 만들려 하지만, 정원 노동은 여전히 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생명과 관계의 증거다. 정원 사회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노동이 만들어내는 느린 시간, 공동체의 유대, 돌봄의 윤리를 탐구하며, AI가 읽어내지 못하는 정원의 깊은 층위를 드러낸다. 이 글은 정원 노동의 사회적 의미를 사례 중심으로 풀어내며, 기술이 약속하는 효율 너머에 숨겨진 인간성을 조명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정원 노동 AI가 포착하지 못하는 돌봄과 시간
    정원 사회학으로 본 정원 노동 AI가 포착하지 못하는 돌봄과 시간

    정원 사회학: 노동은 돌봄의 시간이다

    정원 노동은 단순한 물리적 활동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으며 시간을 재구성하는 돌봄의 실천이다. AI는 정원을 자동화하고 효율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원 노동이 생산하는 감정적·사회적 시간, 느린 리듬, 공동체의 유대를 포착하지 못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 노동을 통해 드러나는 돌봄의 윤리와 시간의 정치성을 탐구하며, AI 시대에 인간 노동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정원 사회학은 정원 노동을 생산성 중심의 작업이 아니라, 돌봄과 시간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돌봄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행위가 아니라, 생명의 리듬에 맞춰 인간의 일상을 조율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연구들은 집식물 돌봄이나 도시 텃밭 노동이 팬데믹 기간 동안 일상의 리듬을 재구성하고, 현재의 강렬함을 강조하는 돌봄 시간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정원 노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주의가 무시하는 느린 시간을 소환한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도시 농장에서 관찰된 연구처럼, 농부들은 생물학적 주기와 도덕적 책임을 우선하며, 여성화된 돌봄 노동을 통해 자본주의 템포에서 벗어난다. 이는 모성 휴가와 조기 퇴직 같은 복지 제도가 노동의 시간 구조를 형성하는 사회적 맥락을 드러낸다. 정원 사회학이 강조하는 바는, 이 노동이 개인적 치유를 넘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점이다.

     

    AI가 보는 정원 노동: 효율과 자동화

    AI는 정원 노동을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본다. 최근 실험에서 AI 로봇 가드너는 인간과 동등한 수확을 달성하면서 물 사용량을 44% 줄였고, 센서와 카메라로 식물 종류를 식별해 정밀 관리를 수행했다. 이는 잡초 제거, 물 주기, 영양 공급 같은 반복 노동을 24시간 자동화하며, 인간의 실수와 피로를 최소화한다.

     

    AI의 강점은 정밀성과 지속성에 있다. 로봇은 토양 조건, 수분 필요량, 해충 발생을 실시간 분석해 최적 행동을 취하고, 대규모 농장에서 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은 '비효율적'으로 치부되며, 물리적·반복적 측면만 강조된다. AI가 포착하는 것은 생산량과 자원 절감 같은 양적 지표이지, 노동이 만들어내는 질적 경험은 아니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돌봄 노동의 본질

    정원 사회학은 돌봄 노동을 생명과 관계를 유지하는 '비생산적' 실천으로 재정의한다. 돌봄은 식물이 자라는 느린 시간에 맞춰 인간의 몸과 감정을 조율하며, 생산주의가 짓누르는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한다. 팬데믹 기간 집식물 돌봄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매일의 관리가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식물과의 유대가 시간 감각을 변화시켰다고 증언했다. 이는 마리아 푸이그 데 라 벨라카사의 '돌봄 시간' 개념처럼, 생산 중심 사회에서 무시되는 생명적 실천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돌봄 노동은 젠더화되어 있다. 도시 농장에서 여성들은 긴 모성 휴가를 활용해 느린 농사를 선택하지만, 이는 역사적 성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 노동이 개인적 자가 돌봄에서 공동체 돌봄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주목한다. 노동의 가치는 수확량이 아니라, 관계 형성과 회복력 구축에 있다.

     

    돌봄의 연쇄

    영국 레딩(Reading)IRDC(Integrated Research Development Centre) 커뮤니티 가든 연구는 정원 노동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네팔 커뮤니티 중심으로 16주 프로그램을 실시한 실험에서, 공동체 그룹은 정원 활동을 통해 토양 분석, 작물 재배, 홈 컴포스팅을 실천하며 규칙 제정과 역할 분담을 이뤘다. 참여자들은 토양 테스트 키트 사용 훈련, 비원주민 작물 도입, 폐기물 관리 워크숍을 진행하며, 단순 원예 그룹보다 공동체 소속감과 건강 증진 효과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이 노동은 돌봄의 연쇄를 만들었다. 수확물을 공유하며 메시지와 함께 이웃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대면 소통이 시작됐고, 이는 지역 전체 네트워크로 확대됐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이 교류, 영향력, 소속감, 공유된 감정적 연결이라는 공동체 의식의 네 요소를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AI가 자동 관수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는 물 주기나 비료 주기는 이 가든에서 관계 형성의 매개였다. 노동의 시간은 프로그램 기간을 넘어 지속됐으며, 대학 시설 방문과 후속 작물 심기로 겨울까지 이어졌다. 이 사례는 고밀도 도시 이민자 생활의 갈등을 노동을 통한 돌봄으로 치유하는 영국적 맥락을 보여준다.

    빌니우스 도시 농장의 시간 다툼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도시 농장 연구는 두 가지 돌봄 모달리티의 충돌을 통해 노동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한 유형은 상업적 생산성을 추구하며 자본주의 템포에 맞춘다. 다른 유형은 생물학적 주기와 도덕적 책임을 우선하며, 느린 노동을 선택한다. 여성 농부들은 모성 휴가 기간에 농사를 시작해 퇴직까지 이어가며, 식물과 땅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이 노동은 성 불평등을 재생산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속도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준다. 연구자들은 돌봄 노동이 생산성과 미학을 재정의하며, 포스트소셜리즘 맥락에서 복지 제도가 시간 구조를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AI가 최적화하는 노동과 달리, 이 농부들의 시간은 예측 불가능한 자연 주기와 얽혀 있으며, 공동체 내 갈등과 협력을 통해 진화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 사례를 통해 노동이 단순 기술이 아닌, 사회적·정치적 시간 생산으로 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영국 커뮤니티 가든의 탈노동 상상력

    영국 커뮤니티 가든 연구는 노동이 ‘탈노동(post-work)’적 상상력을 자아내는 사례로 분석된다. 커뮤니티 가든 참여자들은 노동을 통해 자본주의 노동에서 벗어난 대안적 삶을 실험한다. 노동은 생산물이 아닌, 지속되는 관계와 회복력을 만든다. 팬데믹 기간 가든은 고립된 개인을 연결하며, 노동의 리듬이 정신 건강을 지탱했다.

    이 노동은 지속되는 것들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한다. AI 로봇이 24시간 노동을 제안하는 반면, 인간 노동은 계절과 날씨, 참여자의 감정에 따라 변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운다. 정원 사회학은 이 사례를 노동의 해방적 잠재력으로 평가하며,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 시간을 강조한다.

    AI 시대 정원 노동의 딜레마와 미래

    AI는 노동을 효율화하지만, 정원 사회학이 보는 돌봄의 가치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로봇이 물과 노동을 절감하면 인간은 관리를 포기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공동체 노동의 기회가 사라진다. 연구자들은 AI를 보완 도구로 활용하되, 노동의 사회적 의미를 유지할 것을 제안한다.

    정원 사회학의 대안은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AI가 데이터 분석을 맡고, 인간이 돌봄과 관계를 담당한다. 한국 커뮤니티 가든처럼 프로그램 설계 시 공동체 참여를 강조하면, 노동은 지속된다. 미래에는 AI가 노동 부담을 줄여 더 깊은 돌봄 시간을 허용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원 사회학은 AI 시대에 노동이 여전히 인간성과 공동체를 지키는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맺은 말

    정원 노동은 AI가 최적화할 수 없는 영역이다. 로봇이 물을 아끼고 수확을 늘릴 수는 있지만, 흙냄새 속에서 나누는 대화, 계절의 실패를 함께 견디는 연대, 돌봄의 피로가 쌓여가는 그 시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정원 사회학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단순하다. 기술이 노동을 빼앗는 시대에, 우리는 정원을 어떤 관계의 공간으로 남겨둘 것인가. 한국의 아파트 가든에서 빌니우스의 도시 농장까지, 사례들은 이미 답을 속삭인다. 노동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질 것이다. AI와 함께 걸어가되, 손으로 흙을 만지는 그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원은 결국 우리 자신의 시간과 돌봄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