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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말하는 ‘좋은 정원’은 대체로 효율적이고 관리하기 쉬우며,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공간이다.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식물 생존 확률이 높으며, 유지관리 비용이 최소화된 정원은 알고리즘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러나 인간이 경험하는 ‘좋은 정원’은 이와 다르다. 인간에게 정원은 기억과 관계, 계층, 실패와 우연, 심지어 비효율까지 얽혀 있는 사회적 공간이다. 이 간극 때문에 우리는 AI가 정의한 ‘좋은 정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이 글은 바로 그 불일치를 정원 사회학의 시선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AI의 ‘좋은 정원’ 정의 방식
AI가 정원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계량화 가능성이다. 토양의 수분과 pH, 일조량과 그늘의 분포, 지역의 기후대, 식물의 생존 확률과 성장 속도, 그리고 장기적인 유지관리 비용 등이 주요 판단 지표가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센서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수치로 수집되고 비교된다.
AI 기반 정원 설계 도구들은 입력된 기후와 토양 조건에 맞는 식물 목록을 추천하고, 물 사용량을 최소화하며, 생물다양성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배치를 계산한다. 설계 과정에서 알고리즘은 수많은 배치안을 생성한 뒤, 햇빛과 그늘의 분포, 동선의 효율성, 시야의 개방성, 접근성, 관리 난이도를 비교해 가장 효율적이고 실행 가능성이 높은 안을 상위에 올린다.
최근 상용화된 AI 정원·조경 플랫폼들은 사진이나 도면을 입력받아 스타일의 일관성, 계절별 볼거리, 식물 크기와 배치의 조화, 관리 용이성 같은 기준으로 결과물을 점검하라고 안내한다. 이때 ‘좋음’이란 개념은 결국 성능과 일관성, 다시 말해 관리 가능한 질서에 가깝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정원의 본질: 관계로 이루어진 공간
정원 사회학은 정원을 단순한 녹지나 미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권력과 정체성이 서로를 드러내는 사회적 장으로 이해한다. 정원은 누가 만들고, 누가 돌보며, 누가 접근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회학자 피에레트 온다뉴-소텔로(Pierrette Hondagneu-Sotelo)는 「정원의 사회학을 위한 질문들」에서 정원을 통해 계급, 젠더, 인종, 이주, 돌봄 노동이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묻자고 제안한다. 특히 커뮤니티 가든 연구들은 정원이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니라 시민과 활동가, 생산자라는 주체성이 형성되고 실험되는 정치적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공유된 토지에서 비상품화된 방식으로 먹을거리를 재배하고 나누는 실천은, 도시 공간의 소유와 통제를 둘러싼 지배적 질서에 도전하는 미시적 사회운동으로 해석된다. 이 관점에서 ‘좋은 정원’은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이 아니라, 누가 어떤 관계망 속에서 그 공간을 돌보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규정되는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장소가 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충돌의 첫 지점: 효율과 비효율의 차이
AI는 물과 에너지, 노동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배치를 선호한다. 그 결과 관리가 편하고 실패 확률이 낮은 정원이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된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이 주목하는 것은 종종 정원의 비효율성이다.
도시 커뮤니티 가든에서 일부러 생산성이 떨어지는 다종 혼식이나 야생성을 유지하는 선택은, 상품성보다 사용 가치와 생태적 감수성을 중시하는 정치적 실천으로 해석된다. 반복적인 잡초 뽑기와 과도한 노동이 필요한 텃밭 가꾸기는 경제성만 놓고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참여자들에게는 공동체 형성과 일상의 리듬, 돌봄의 윤리를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다.
AI가 불필요한 요소로 분류해 제거 대상으로 삼는 것들이, 정원 사회학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의미와 관계를 만들어내는 매개가 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미학의 문제: 최적화와 계층의 시야
AI 정원 디자인 도구들은 사용자가 선택한 스타일에 맞춰 시각적 일관성과 조화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은 어떤 미학이 누구의 취향을 대표하는지를 묻는다.
서구의 대형 사유 정원과 전원주택 정원은 오랫동안 토지 소유와 계급을 드러내는 지위재로 기능해 왔다. ‘정원다운 정원’의 이미지는 중산층 이상, 특정 문화권의 취향을 표준으로 내면화하고 있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은 과거 이용자의 선택을 학습해 비슷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미 지배적인 미적 코드를 더욱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음악과 영화 추천 알고리즘을 분석한 연구들이 지적하듯, 이러한 시스템은 미적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다양성을 축소할 위험을 내포한다. 정원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데이터의 한계: 몸과 기억은 숫자가 되지 않는다
AI는 정원을 수치와 패턴으로 읽는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이 주목하는 많은 요소들은 데이터로 옮기기 어렵다. 특정 나무 아래에서 나눈 대화, 가족이 함께 심은 나무에 얽힌 상실과 애도의 서사, 이주민 커뮤니티가 고향의 씨앗을 나누며 공유하는 기억은 데이터베이스의 항목이 되기 힘들다.
커뮤니티 가든 연구는 정원이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장소이자, 도시의 속도와 경쟁을 잠시 멈추게 하는 틈으로 경험된다고 말한다. AI가 식재 밀도와 동선을 최적화할 수는 있어도, 흙을 만지는 감각과 계절의 냄새, 이웃과 나누는 대화의 시간은 대리할 수 없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공간정치: 알고리즘이 보지 못하는 정의의 문제
도시 사회학과 공간 이론은 정원을 지배적 도시 질서에 도전하는 대항 공간으로 해석해 왔다. 공동체 정원은 비상업적 관계와 대안적 식량 시스템을 실험하는 장소가 될 수 있으며, 주거 불안과 빈곤, 차별에 맞선 사회운동의 한 형태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러나 AI가 설계한 ‘공정하고 효율적인 정원’은 이러한 권력관계를 평가 기준에 포함하지 않는다. 토지 소유 구조, 참여의 장벽, 젠더화된 돌봄 노동, 이주민과 소수자의 배제는 알고리즘의 시야 밖에 놓이기 쉽다. 이 때문에 사회학적으로는 정의롭지 않은 정원이, 알고리즘에게는 매우 잘 설계된 정원으로 보이는 역설이 발생한다.
정원 사회학의 대답: AI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
정원 사회학의 대답은 AI의 기준을 전면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능과 생태, 관리의 차원에서 AI의 정의는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 진실일 뿐, 정원의 ‘좋음’을 최종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정원에서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판단은 사회적 정의와 돌봄, 기억과 관계의 문제를 포함해야 하며, 이는 인간과 공동체의 토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커뮤니티 가든과 공공 정원에서는 이용자와 주민이 스스로 ‘우리에게 좋은 정원’을 논의하고 설계와 관리에 반영하는 참여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결국 “AI가 정의한 ‘좋은 정원’에 왜 동의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좋음의 기준을 누가 어떤 몸과 기억을 가지고, 어떤 권력 관계 속에서 정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사회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원 사회학의 역할은 AI의 시선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인간과 공동체가 스스로 정원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내는 데 있다.
맺은 말
AI는 정원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안정적인 결과를 내고, 실패의 가능성을 낮추는 데에는 분명 강점이 있다. 그러나 정원이 인간 사회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언제나 효율의 바깥에 놓여 있었다. 정원은 시간을 들여 돌보고, 실패를 감내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사회적 공간이 된다.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정원’이란 이미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협상되고 다시 정의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몸의 감각,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 계층과 권력의 문제, 그리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포함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어떤 알고리즘에도 완전히 위임될 수 없다.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좋음’을 참고하되,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도록 질문을 던지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적 감각이 필요하다. 정원은 그 감각을 훈련하는 가장 구체적인 장소다.
흙을 만지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며, 뜻대로 되지 않는 자연을 마주하는 경험은 인간이 여전히 세계에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원 사회학이 말하는 좋은 정원은 바로 그 증거가 축적되는 공간이다. AI가 제안하는 정원과 거리를 두고, 다시 한 번 손에 흙을 쥐는 일. 그것이 AI 시대에 정원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실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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