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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례로 본 정원 사회학 이야기

📑 목차

    유럽 도시에 발을 들이면 콘크리트 벽 사이로 초록빛이 스며든 공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궁전 정원이 아니라 동네 공터나 폐공장 부지를 개조한 작은 생태정원들이다. 이 정원들은 단순히 꽃과 채소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도시 주민들이 모여 대화하고 갈등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 무대로 기능한다. 정원 사회학은 바로 이런 공간을 통해 사회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낸다. 누가 이 정원을 가꾸고 누가 소외되는지, 어떤 권력이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베를린의 텃밭부터 파리의 커뮤니티 가든까지, 이 정원들은 도시의 생태적 실험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 글은 유럽의 생태정원 사례를 따라가며 정원 사회학의 시각으로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도시 틈새에서 피어나는 이 작은 숲들이 어떻게 관계를 재배하는지 살펴보자.

     

    유럽 사례로 본 정원 사회학 이야기
    유럽 사례로 본 정원 사회학 이야기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베를린의 프린체스이넨가르텐 (Prinzessinnengärten)

    베를린의 프린체스이넨가르텐은 모리츠플라츠 근처 폐쇄된 학교 부지에 2009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생태정원이다. 이곳은 화학 비료 없이 퇴비와 빗물을 활용해 토종 채소와 허브를 재배하며 도시 농업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주민들은 팔레트로 화단을 짜고 폐자재로 벤치를 만들며 공간을 꾸몄다. 낮에는 아이들이 흙을 파헤치고, 저녁에는 어른들이 와인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이 정원은 도시 땅의 소유권을 둘러싼 투쟁의 장이다. 원래 임시 허가로 시작된 이 공간은 개발 압력에 직면해 시민 운동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정원을 지키기 위해 청원을 올리고 축제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이웃 간 유대가 강화되었지만,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정원이 유명해지면서 주변 집값이 오르고 원주민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정원 사회학은 이런 모순을 지적한다. 생태정원이 환경 친화적 이미지를 만들며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린체스이넨가르텐 참여자들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이주민과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그들은 정원을 단순한 텃밭이 아닌 공공 토지의 대안적 사용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정원은 도시 개발 논의에 시민 목소리를 삽입하며 사회적 변화를 촉발한다. 흙을 파는 손길 하나하나가 도시의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는 셈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파리의 어반 얼롯먼트(Urban Allotments)

    파리 19구의 어반 얼롯먼트 프로젝트는 2010년대부터 도시 유휴지를 할당정원으로 전환한 사례다. 시 당국이 빈 땅을 시민들에게 1년 단위로 빌려주며 생태적 재배를 장려한다. 참여자들은 작은 플롯에서 토마토와 상추를 키우고, 공동 구역에서 허브 정원을 가꾼다. 이 정원들은 고층 아파트 주민들에게 드문 자연 접촉 기회를 제공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곳에서 계층 간 긴장을 포착한다. 초기 참여자는 중산층 환경주의자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지역 주민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정원을 통해 언어 장벽을 넘어 소통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계 이주민과 프랑스 원주민이 함께 퇴비를 만들며 문화 교류를 시작했다. 그러나 참여의 불평등도 드러났다. 직장 시간에 맞춰 정원에 올 수 없는 저소득 노동자들은 소외되었다. 정원 사회학 연구자들은 이를 '시간 자본의 불균형'으로 분석한다. 정원이 열린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가 시간과 이동 수단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파리 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간 워크숍과 탁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정원은 사회 통합의 매개체가 되었다. 참여자들은 정원 모임을 통해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시의원에게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처럼 생태정원은 생물 다양성을 키우는 동시에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다. 도시의 틈새에서 피어난 이 플롯들은 관계의 씨앗을 뿌리는 농장과 같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본 런던의 힐링 가든스(Healing Gardens)

    런던 사우스뱅크의 힐링 가든스는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생태정원이다. 2015년 지역 NGO가 주도해 시작된 이곳은 폐쇄된 공원 부지를 치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참여자들은 매주 모여 잡초를 뽑고 꽃을 심으며 대화를 나눈다. 정원 사회학은 이 정원을 돌봄 노동의 현장으로 본다. 대부분 여성과 노년층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물을 주고 수확물을 나눈다. 이 노동은 보이지 않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이다. 연구에 따르면 정원 활동은 우울증 환자의 70%에서 증상 완화를 가져왔다. 자연 접촉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고 사회적 지지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은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국가 복지 시스템의 공백을 민간 정원이 메우는 구조는 지속 가능한가. 런던의 경우 예산 부족으로 자원봉사에 의존도가 높아졌다. 참여자 중 일부는 정원을 무료 치료소로 여기지만, 운영자들은 번아웃에 시달린다. 이 모순 속에서 정원은 저항의 공간으로 진화했다. 참여자들이 시의회에 예산 지원을 요구하며 캠페인을 벌였다. 정원 사회학적으로 이는 돌봄의 정치화다. 개인적 치유가 집단적 요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힐링 가든스는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증폭하는 플랫폼이다. 흙 냄새 속에서 맺어지는 대화가 도시의 무관심을 깨운다.

     

    정원 사회학이 드러내는 스웨덴 예테보리의 도시 정원들

    스웨덴 예테보리의 슬로트쇼겐  근처 커뮤니티 가든은 2010년부터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이주민들이 모여 고향 채소를 재배하며 문화 축제를 연다. 정원 사회학은 이곳을 문화 자본의 교환 장으로 분석한다. 스웨덴 토종 채소와 이란 허브가 섞인 화단은 문화 융합의 상징이다. 참여자들은 정원을 통해 언어 수업과 취업 상담을 병행한다. 연구 결과 이 정원은 이주민의 사회적 고립을 40% 줄였다. 그러나 이면도 있다. 정원 규칙이 스웨덴식으로 정해져 일부 문화가 배제되었다. 정원 사회학은 이를 규범의 강제라고 지적한다. 공간이 생태적 자유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적 동화를 유도할 수 있다. 예테보리 시는 이를 보완해 참여자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제 이주민이 직접 규칙을 수정한다. 이 변화는 정원 사회학의 핵심 교훈이다. 생태정원은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권력 협상의 장이다. 예테보리의 가든은 다문화 공존의 실험실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서로의 채소를 맛보며 웃는 장면은 작은 기적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탐구하는 부다페스트의 저항 정원

    부다페스트의 심플라 케르트는 폐건물을 생태정원으로 바꾼 사례다. 2000년대 초 반항적인 예술가들이 시작한 이곳은 이제 주말 시장과 콘서트 장소로 유명하다. 정원 사회학은 이 정원을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본다. 상업 개발 대신 시민이 공간을 관리한다. 그들은 빗물을 모아 관수하고 폐기물을 퇴비로 재활용한다. 그러나 관광객 유입으로 상업화 위험이 커졌다. 정원 사회학 연구자들은 이를 '상품화의 함정'으로 경고한다. 생태정원이 힙한 브랜드가 되면 원래 주민이 밀려난다. 심플라 게르트 참여자들은 멤버십제를 도입해 지역 주민 우선권을 보장했다. 이 전략은 정원 사회학의 실천적 적용이다. 공간의 공공성을 지키는 구체적 방법이다. 부다페스트의 이 정원은 동유럽 도시 재생의 모델이다. 콘크리트 틈에서 싹튼 풀잎처럼 시민의 창의력이 도시를 바꾼다.

     

    정원 사회학 시각의 리스본 커뮤니티 가든 네트워크

    리스본의 킨타 두 아누 드(Quinta do Ano de) 167017세기 유적 부지에 만들어진 생태정원이다. 지역 주민이 2012년부터 가꾸며 생물 다양성을 복원했다. 정원 사회학은 이곳을 역사적 연속성의 장으로 본다. 과거 유적이 현재 공동체와 연결된다. 참여자들은 올리브 나무를 보존하며 채소 재배를 병행한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 지식 전수가 이뤄진다.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전통 재배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토지 소유권 분쟁이 발생했다. 개발업자가 부지를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이는 공공재의 사유화에 맞선 투쟁이었다. 주민들은 국제적 연대와 캠페인을 통해 정원을 지켜냈고, 이 과정에서 시민 참여가 가진 실질적 힘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 승리는 단일 공간의 보존을 넘어, 도시를 둘러싼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리스본의 정원 네트워크는 20여 개의 정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확장되고 있다. 각 정원은 씨앗과 경험을 공유하며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망을 형성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러한 움직임을 ‘공통장 운동’으로 평가한다. 이는 도시의 땅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돌보고 사용하는 자원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정원 사회학이 조명하는 암스테르담의 할당정원 운동

    암스테르담의 에르텐소프 정원은 1920년대 할당정원 전통을 잇는다. 최근 생태 버전으로 재탄생해 유기농 재배를 강조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곳에서 성별화된 노동을 분석한다. 여성들이 화단 관리와 커뮤니티 행사를 주도한다. 남성들은 무거운 토양 작업을 맡는다. 이 분업은 전통적 성 역할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여성 리더십을 키운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 참여자의 60%가 정원에서 지역 리더가 되었다. 그러나 육아와 일자리 부담으로 일부가 이탈한다. 정원 사회학은 돌봄 인프라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암스테르담 시는 보육 서비스를 연계해 문제를 완화했다. 이제 정원은 가족 단위 활동 장소가 되었다. 아이들이 모종을 심으며 환경 의식을 키운다. 이 운동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할당정원은 세대를 잇는 생태 교육의 산실이다.

     

    맺은 말

    유럽 생태정원들은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재배한다. 베를린의 투쟁, 파리의 교류, 런던의 돌봄 등 각 사례가 정원 사회학의 렌즈로 새롭게 빛난다. 이 정원들은 완벽하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 배제, 노동 불균형 같은 이면을 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모순 속에서 변화가 싹튼다.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흙을 만지며 사회를 재구성한다. 한국 도시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공원 텃밭과 옥상 정원이 늘어난다. 정원 사회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 공간에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어떤 관계를 키울 것인가. 도시 틈새의 생태정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다. 사람들의 꿈과 갈등이 응축된 살아 있는 이야기다. 이제 우리 차례다. 동네 공터에 씨앗을 뿌려보자. 그곳에서 새로운 사회가 자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