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의 시작은 권력과 소유에서 출발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본래 자연을 즐기기 위한 공간이기 이전에, 권력과 소유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정원들은 대부분 왕과 귀족,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공중정원, 이집트 파라오의 신전 정원, 중국 황실의 원림은 모두 막대한 토지와 노동력, 물과 식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없으면 조성 자체가 불가능했다. 즉 정원은 처음부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희소한 자원을 독점할 수 있는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정원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가까이 두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을 ‘관리’하고 ‘배치’하며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했다. 이는 곧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도 맞닿아 있었고, 그 사고방식을 실현할 수 있는 계층만이 정원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정원은 처음부터 계층적 불평등 위에서 탄생한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토지와 노동을 독점할 수 있는 자의 특권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넓은 토지뿐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력이 필요하다. 이 조건 자체가 이미 계층적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별서정원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담양 소쇄원이나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자연 속에 소박하게 자리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토지 소유권과 노비 노동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공간이었다.
특히 소쇄원은 자연에 순응하는 정원으로 자주 해석되지만, 그 ‘자연스러움’ 역시 철저히 설계되고 관리된 결과였다. 이는 생계를 위해 땅을 일궈야 했던 농민의 자연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자연이다. 농민에게 자연은 삶의 터전이자 노동의 대상이었지만, 사대부에게 자연은 사유와 성찰, 취향을 드러내는 배경이었다. 이렇게 동일한 자연이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정원은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의 특권을 상징하게 되었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여유와 시간의 불평등이 만든 공간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돈보다도 시간의 불평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정원은 하루 이틀에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계절을 따라 가꾸고 기다려야 하는 공간이다. 이는 곧 생존 노동에서 벗어난 삶을 전제로 한다. 유럽 귀족 사회에서 정원 산책은 중요한 사교 활동이었고, 정원에서의 산책 자체가 ‘일하지 않는 시간’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18세기 영국의 풍경식 정원 사례를 보면, 귀족들은 일부러 자연스러운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수백 명의 노동자를 동원했다. 인공적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더 많은 인공이 투입된 것이다. 이 아이러니는 정원이 얼마나 계층적 공간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정원 풍경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계층의 시간이 숨어 있다. 이처럼 정원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곧 계층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근대 도시에서 주거 계층을 가르는 기준
근대 도시가 형성되면서 정원의 계층성은 새로운 방식으로 강화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다수의 노동자는 밀집 주거지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개인 정원은 점점 사라졌다. 이 시기 단독주택에 딸린 정원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중산층 이상의 안정성과 성공을 상징하는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이 현상은 반복된다. 아파트 단지 내 조경은 ‘공용 정원’이라는 형태로 제공되지만, 실제 개인 정원을 가진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는 여전히 희소하다. 특히 전원주택 단지의 정원 이미지는 경제적 여유와 느린 삶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정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정한 삶의 단계와 계층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기호로 작동하는 것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취미가 된 정원과 문화자본의 차
현대 사회에서 정원은 취미로 대중화되었지만, 모든 취미가 그렇듯 접근성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텃밭을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어떤 사람은 정원을 ‘미학’과 ‘철학’의 영역으로 이해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라 교육 수준과 문화 경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같은 식물을 키우더라도, 누군가는 “예쁘다”에서 멈추지만 누군가는 생태적 맥락, 토양, 식물의 기원까지 이야기한다. 이러한 언어 능력과 해석 능력은 문화자본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정원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신의 문화적 위치를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SNS에 공유되는 정원 사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사진 속 정원은 자연이 아니라, 그 자연을 소비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공공정원은 계층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최근 도시 곳곳에 조성되는 공공정원과 시민정원은 정원의 계층성을 완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실제로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공공정원은 물리적 접근성 면에서는 평등하다. 하지만 정원을 경험하는 방식까지 평등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공정원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데 그치고, 일부는 식물과 공간을 해석하며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이 차이는 여전히 교육과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정원은 개방되었지만, 정원을 읽는 능력은 여전히 계층적으로 분배되어 있다. 이 점에서 공공정원은 계층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은 제공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이유
결국 “정원은 왜 계층의 상징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정원의 과거만을 설명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우리가 정원을 어떻게 소비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정원이 소유와 과시, 취향의 경쟁 공간으로 남는다면 계층의 상징이라는 성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원이 돌봄과 관계, 공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재정의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정원이 더 이상 ‘가진 자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가꾸는 공간’이 될 때, 계층의 상징이라는 오래된 의미는 서서히 희미해질 것이다. 정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뀔 때, 정원 역시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보너스
중국 황실 정원 이화원(頤和園, Summer Palace)은
단순한 황실 정원이 아니라 동아시아 정원사상·권력·자연관·기술·일상미학이 집약된 ‘완성형 제국 정원’이다.
정원사회학·정원문화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화원은 다른 서양의 정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권력의 관계를 보여준다.
1. 이화원이란 무엇인가
- 명칭: 이화원(頤和園)
- 頤: 기르다, 보양하다
- 和: 조화, 평화
→ “몸과 마음을 기르고 조화를 이루는 정원”
- 위치: 중국 베이징 서북부
- 규모: 약 290ha (경복궁의 약 7배)
- 핵심 구성:
- 만수산(萬壽山) – 인공 산
- 곤명호(昆明湖) – 인공 호수
이화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설계된 풍경 전체’이다.
2. 역사적 형성과 변천
기원 – 청나라 건륭제
- 18세기 중반, 건륭제가 조성
-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
- 기존 자연 지형을 활용하되 대규모 토목으로 재편
파괴와 재건 – 제국의 상처
-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 영·프 연합군에 의해 대규모 파괴
- 이후 서태후(慈禧太后)가 재건
- 해군 예산을 전용했다는 비판적 서사 유명
이화원은
제국의 영광 + 쇠퇴 + 정치적 논쟁이 함께 축적된 공간이다.
3. 공간 구성의 핵심 원리
① 산과 물의 결합 (산수관)
중국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산수(山水)이다.
- 만수산 → 정적인 질서, 영속성
- 곤명호 → 유동성, 생명, 시간
이화원은 “산은 뒤에서 받치고, 물은 앞에서 펼쳐지는”
이상적인 풍수·우주 질서를 구현한다.
인공 자연의 극대화
- 곤명호는 인공 호수
- 만수산도 대규모 인공 성토
- 그러나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설계
자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닮게 만드는 기술’
→ 동아시아 정원미학의 핵심
4. 주요 공간 요소와 상징
장랑(長廊, Long Corridor)
- 길이 약 728m
- 1만 4천여 점의 회화 장식
- 사계절·역사·신화·일상 풍경 묘사
정원 속을 걷는 행위 = 이야기를 읽는 행위
십칠공교(十七孔橋)
- 17개의 아치
- 숫자 9의 상징성(제왕의 수)
- 다리 위 석사자 500여 개
단순한 교량이 아니라
제국의 질서를 시각화한 상징 구조물
③ 불향각(佛香閣)
- 만수산 정상의 상징적 건축
- 종교·정치·풍수의 결합
- 정원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점
‘보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
석방(石舫, Marble Boat)
- 대리석으로 만든 배
- 실제로는 항해 불가
- “국가는 배, 백성은 물”이라는 정치 은유
- 안정과 불변을 과시하는 상징
- 동시에 제국 말기의 아이러니
5. 이화원의 정원 미학
차경(借景)
- 먼 산, 하늘, 물을 끌어들여 풍경 확장
- 정원의 경계를 흐림
이동 시점의 미학
- 고정된 전망보다 걸으며 변하는 풍경
- “한 장면 = 하나의 그림”
서양식 축선 정원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
6. 권력의 정원으로서의 이화원
이화원은 결코 ‘사적인 쉼터’가 아니다.
- 황제와 황실 전용 공간
- 자연을 소유·연출·해석할 권력의 독점
- 물, 토지, 노동의 집중
노골적인 과시보다는 ‘조화와 교양’의 언어로 권력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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