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의 탄생은 권력자의 전유물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언제나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정원은 결코 보편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인류 문명 초기에 등장한 정원은 대부분 권력자와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 문명에서 정원은 왕과 신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일반 대중은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특히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단순한 미적 공간이 아니라, 물을 끌어올리는 기술력과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다.

정원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인간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통제는 오직 권력을 가진 자만이 가능했다. 물을 끌어들이고, 나무를 옮겨 심고, 계절을 조율하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지배를 의미했다. 따라서 정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누가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으며, 그 답은 언제나 소수의 지배 계층이었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종교와 이념이 만든 신성한 공간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이 권력자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종교와 이념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정원은 ‘낙원’을 지상에 구현한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네 개의 수로가 교차하는 차하르바그(Chahar Bagh) 형식의 정원은 신의 질서를 상징했다. 이러한 정원은 종교적 권위와 정치권력이 결합된 공간이었고, 왕과 귀족, 종교 지도자만이 누릴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황실 정원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천자(天子)가 천하의 질서를 대변한다는 세계관을 공간으로 구현한 장소였다. 원림의 산과 물, 건축물 배치는 음양오행과 우주 질서를 반영했으며, 이는 곧 황제의 통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정원은 자연을 닮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이념화된 공간이었다. 결국 정원은 신성함과 질서를 독점할 수 있는 계층의 공간으로 기능하며, 일반 민중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경계를 형성했다.
사대부와 귀족의 사유 공간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중세 이후 등장한 사대부와 귀족의 정원 역시 계층적 성격이 분명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별서정원은 자연 속에 은거하며 학문과 사색을 즐기는 공간으로 이상화되지만, 이 공간 역시 토지 소유와 노동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윤선도 원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평가받지만, 실제로는 지배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적 공간이었다.
유럽의 귀족 정원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재단하며 절대왕정의 권위를 과시한 대표적 사례다. 반면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인공성을 감추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했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이처럼 정원은 형태와 미학이 달라져도,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주체는 언제나 사회 상층부였다.
정원 사회학이 말하는 민중과 자연, 정원 밖에 있었던 사람들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연은 정원이 아니었다. 농민과 노동자에게 자연은 생존의 터전이었고, 경작과 노동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환경이었으며, 정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다. 같은 자연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풍경이고, 누군가에게는 생계였다.
이 차이는 정원이라는 공간이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정원은 자연을 ‘쓸모없게’ 둘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공간이었고, 생산성과 효율에서 벗어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계층의 특권이었다. 따라서 정원은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고, 민중의 삶과는 구조적으로 분리된 공간으로 남았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본 근대 이후 정원의 이동, 중산층의 상징으로
근대 산업화 이후 정원의 주인은 점차 왕과 귀족에서 중산층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것이 정원의 계층성이 사라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원은 새로운 방식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개인 정원은 희소해졌고, 정원을 소유한 단독주택은 안정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정원은 여전히 특정 계층의 삶을 상징한다. 전원주택의 마당, 가드닝 취미, 정원 관련 소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시간과 자본, 공간을 동시에 요구하는 삶의 양식이다. 아파트 단지의 조경이 보편화되었지만, 그것은 공용 공간일 뿐 개인의 정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형태를 바꾸며 계층성을 유지해 왔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본 오늘날의 정원,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역사적으로 정원은 누구의 공간이었나”라는 질문은 결국 오늘날의 정원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다. 정원은 오랫동안 소유와 권력, 여유의 상징이었으며,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공공정원과 시민정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정원을 해석하고 누리는 방식에는 여전히 차이가 존재한다.
앞으로 정원이 진정으로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개방을 넘어, 정원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정원이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 돌봄의 공간, 배움의 공간으로 재정의될 때 비로소 역사적 계층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의 역사는 곧 사회의 역사이며, 우리가 어떤 정원을 만들고 누릴 것인지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보너스
바빌론의 공중정원(Hanging Gardens of Babylon)은 단순한 고대 조경 유적을 넘어 정원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극적으로 던지는 사례이다. 실재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상상력과 정원 담론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는 점 자체가 이 정원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1.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속의 공중정원
공중정원은 다음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 기자의 대피라미드
-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
- 로도스의 거상
-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 바빌론의 공중정원
이 목록에서 현재까지 실체가 남아 있는 것은 피라미드뿐이며,
공중정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모호하고 가장 ‘정원다운’ 불가사의이다.
→ 이는 곧, 정원은 건축물보다 기록과 상상에 더 많이 의존하는 문화유산임을 보여준다.
2. ‘공중’이라는 이름의 의미
‘Hanging’이라는 단어는 현대적 의미의 ‘매달린’ 정원이 아니다.
- 원어(그리스어 kremastos)의 의미는
→ “돌출된”, “위로 솟아 있는”, “층층이 쌓인” - 즉 고가(高架)·테라스형 정원을 의미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 평탄한 충적지
- 자연적인 산지·숲이 거의 없음
인공적으로 산을 만든 정원,
즉 자연의 부재를 기술로 보완한 풍경이었다.
3. 정치·제국사적 배경
신(新) 바빌로니아 제국
- 기원전 7~6세기
- 네부카드네자르 2세 재위 시기 절정
- 바빌론은 도시·종교·권력의 상징 공간
공중정원의 위치
- 왕궁 인접 혹은 궁성 내부
- 일반 시민 접근 불가
- 철저히 왕실 전유 공간
이는 공중정원이 공공 정원이나 시민 정원이 아닌, ‘권력의 정원’이었음을 의미한다.
4. 왕비 아미티스 설화의 의미
공중정원의 기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왕비 아미티스: 산악 지형의 메디아 출신
- 바빌론의 건조하고 평평한 풍경에 우울과 향수병
- 왕이 고향의 풍경을 재현
이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점은:
정원이 ‘감정의 매개체’로 등장한다는 점
- 향수
- 상실감
- 치유와 위안
이는 현대의 치유정원, 회복정원 개념의 매우 이른 원형이다.
5. 구조적·조경학적 상상
고대 기록을 종합하면 공중정원은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① 대규모 테라스 정원
- 아치형 석조 구조
- 4~5단 이상의 계단식 플랫폼
- 각 층마다 나무·관목·초화 식재
② 토심과 방수 기술
- 돌 → 갈대 → 아스팔트(역청) → 납판 → 토양
- 물이 아래층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한 다층 방수 구조
이는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고도의 건설·토목·환경 제어 기술이다.
6. 관개 기술: 공중정원의 핵심
사막 기후에서 정원을 유지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물이다.
추정되는 시스템
- 유프라테스강에서 물을 끌어올림
- 나선형 스크루 펌프 또는 체인 펌프
- 지속적 인력 투입 필요
사회적 의미
- 정원의 유지 = 노동의 지속적 동원
- 물과 녹색은 권력에 의해 독점됨
공중정원은
자연을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시스템이었다.
7. 실재 논쟁과 니네베 가설
왜 의심받는가
- 바빌론 발굴에서 직접 증거 없음
- 바빌로니아 문헌 부재
- 외부(그리스) 기록에만 등장
니네베 가설
-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궁전 정원
- 산악지형 재현
- 상세한 관개 기록 존재
→ 후대에 “바빌론”이라는 이름으로 오기되었을 가능성
이 논쟁 자체가
정원은 ‘물리적 실체’보다 ‘이야기’로 더 오래 남는 유산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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