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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정원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정원은 단순히 나무와 꽃이 있는 장소가 아니다. 정원은 사람의 생각, 시대의 가치, 그리고 사회의 관계가 식물의 언어로 표현된 사회적 풍경이다. 사람들은 정원을 만들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라는 사회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정원 사회학의 시작
정원사회학이라는 학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정원’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녹아 있는 사회의 구조, 문화의 흔적, 인간의 심리적 관계를 읽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전통 정원은 깔끔하게 윤곽 잡힌 잔디와 대칭 구조가 특징인데, 이는 단순히 미적 취향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질서와 통제,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관리할 수 있다는 권위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 반면 일본의 정원은 돌 하나, 물결 하나에도 여백의 미와 조화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인공의 정성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동양적 사유가 숨 쉬고 있다. 같은 정원이라도 각기 다른 사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정원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 정원인 담양 소쇄원은 자연의 형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은둔과 성찰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은 단지 나무를 심은 마당이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오롯이 담긴 철학의 풍경이었다. 반면 경복궁 안의 향원정은 권력과 조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왕의 정치적 이상과 미적 감각이 함께 담겨 있었다. 정원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고, 사회가 추구한 질서와 아름다움이 보인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모두의 공간
요즘은 정원의 의미가 크게 바뀌었다. 한때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정원이 이제는 모두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작은 공터에 생겨난 ‘공동체 정원’, 옥상에 조성된 ‘도시농부 텃밭’, 심지어 회사 옥상정원까지. 정원은 더 이상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이웃과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새로운 사회적 장이 되었다. 서울시의 ‘시민정원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땅을 고르고 모종을 심으며 ‘이웃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새로이 맺고 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말 한마디도 안 했던 이웃과 함께 물을 주며 친구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자연 속에서 치유한다. 식물이 자라듯,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게 조금씩 자라난다.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가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출이 줄고 인간관계가 단절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 식물을 두고 세상의 리듬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물을 줄 때마다 새 잎이 돋는 걸 보며,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존재감을 느꼈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단순히 취미가 아니라 나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사회적 행위였다. SNS에서는 식물의 성장기를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식물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식물이 하나의 매개체로서 사람을 이어주는, 말 그대로 ‘식물의 언어로 사회가 말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정원은 이렇게 개인과 사회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다. 한 사람의 정원은 그 사람의 취향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도심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조경 정원을 보면, 안정과 질서, 배제와 사유의 경계가 뚜렷하다. 겉보기에 평온한 그 공간은 사실상 누구의 공간인지,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를 통해 사회적 계층을 구분 짓는다. 반대로, 마을 주민이 함께 만든 정원은 질서보다는 다양성을, 통제보다는 나눔을 이야기한다. 꽃이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지 않아도 그 속에는 따뜻한 협력과 돌봄의 언어가 자란다.
정원 사회학에서 인간과 식물의 연결망
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는 인간과 식물이 함께 연결망을 이루어 세상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정원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식물과 인간이 공생하는 관계의 언어가 작동한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는 자연의 질서를 배우는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식물의 속도는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기다리는 법’과 ‘돌보는 마음’을 배운다. 그 마음의 연습이 모여 사회 전체의 배려와 공감의 문화로 확장된다면, 정원은 단순한 취미 공간을 넘어 사회의 회복력을 키우는 장소가 된다.
정원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수국이 피는 시기, 담쟁이가 벽을 타오르는 모습, 떨어진 낙엽 위를 걷는 사람의 발자국까지—모든 것이 사회적 메시지로 읽힌다. 정원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언어다. 누군가는 정원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자연과 평등하게 대화하려 한다. 그 어떤 방식이든, 정원은 늘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사회적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살아 있는 언어
그래서 나는 정원이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식물의 형태와 배치, 그것을 돌보는 사람의 손길, 그리고 함께 그 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모여 ‘정원의 문장’을 이룬다. 우리가 식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우리가 관계의 사회를 여전히 믿고 있다는 뜻 아닐까? 정원의 언어는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더 함께 살아가자”라고.”고.
보너스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
브루노 라투르는 인간과 식물, 동물, 기술, 기후 같은 비인간 존재까지 모두 행위자(actor)로 보고, 이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연결망(network)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이 바로 그의 대표적인 이론인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이다.
인간만 사회의 주인공이 아니다
전통적인 사회학에서는 보통 사회를 인간들 사이의 관계, 제도, 문화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건이나 기술, 식물, 동물은 배경처럼 취급되기 쉽다. 하지만 라투르는 이런 사고방식이 현실을 너무 단순화한다고 본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non-human)도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actant)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식물, 동물, 세균, 산, 강, 기후, 스마트폰, 도로, 심지어 속도 방지턱 같은 인프라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어떤 거리에서 사람들이 속도를 줄이는 이유는 경찰 때문이 아니라, 도로 위의 과속 방지턱이라는 물질적 존재가 운전자의 행동을 바꾸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비인간도 인간의 행동에 실제로 영향을 주므로, 라투르는 이들을 수동적 배경이 아닌 능동적인 행위자로 보자고 제안한다.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의 핵심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사회를 인간들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뒤섞여 있는 연결망(networks)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행위자(actors/actants):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존재. 인간, 식물, 동물, 기술, 제도, 자연현상 등이 포함된다.
연결망(networks): 이 행위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얽혀 있는 관계의 구조.
이 이론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인간/비인간을 위계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인간이 주인, 비인간이 도구라는 이분법을 깨고, 모두를 대칭적으로(symmetrically) 바라보자고(symmetrically) 한다.
사회와 자연을 따로 떼지 않는다. 사회·생태 시스템이 서로 얽힌 이질적인 네트워크라고 본다.
사회가 원인이다 같은 추상적인 설명을 피하고,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연결의 사슬을 추적하는 데 집중한다.
인간과 식물이 함께 만드는 연결망
이제 이 관점을 인간과 식물에 적용해 보면, 정원이나 숲, 농업 시스템 같은 것이 모두 라투르가 말하는 행위자-연결망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한 도시의 공동체 정원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은 건강, 힐링, 공동체 활동을 위해 정원을 만든다.
하지만 어떤 식물을 심을 수 있는지는 토양, 기후, 햇빛, 물의 양이 결정한다.
특정 식물(예: 잡초, 외래종)은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정원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벌, 나비 같은 곤충은 수분을 돕고, 병해충은 또 다른 관리 방식을 요구한다.
이때 정원은 단순히 사람이 설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주민, 조경사, 행정),
식물(나무, 꽃, 잡초, 작물),
동물·곤충(새, 벌, 나비, 해충),
물질적 요소(흙, 비료, 도구, 물 공급 시스템),
제도(도시 정책, 예산, 규제)
가 서로 얽혀 움직이는 복합적인 연결망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존재가 정원의 모습과 기능을 함께 결정하므로, 라투르의 언어로 말하면 식물도 정원의 ‘공동 설계자’이자 사회적 행위자가 되는 셈이다.
자연/사회 이분법을 깨는 생태적 시각
라투르는 자연과 사회를 딱 잘라 나누는 현대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그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와 생태 정치 이론에서 ‘자연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라는 비유를 활용하며, 자연도 정치와 도덕의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연(식물, 동물, 기후, 생태계)은 더 이상 침묵하는 배경이 아니다.
과학자, 활동가, 주민, 정책 입안자 등이 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며,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는 정치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각은 환경위기·기후위기 시대에 특히 중요하다.
산림 파괴,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는 인간의 경제·정치 시스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식물과 생태계 역시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되받아치는 행위자로 이해해야, 더 정교한 생태 정치와 윤리를 설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과 식물은 같은 연결망 안에서 서로의 운명을 좌우하는 동료 행위자이며, 이 관계를 무시하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라투르의 큰 메시지다.
정원과 일상에서 ANT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일상적인 예로 정원과 화분, 도시 녹지를 보면 라투르의 생각이 더 쉽게 이해된다.
집 안의 화분 하나가 사람의 일상 리듬(물 주는 시간, 환기, 창가 배치)을 바꾸고, 마음 상태에도 영향을 준다. 이때 식물은 감정과 생활 패턴을 바꾸는 ‘행위자’가 된다.
도시 계획에서 나무의 종류와 배치, 공원의 유무는 주민들의 이동 경로, 만남의 빈도, 건강 지표에도 영향을 준다. 이때 식물과 녹지 시스템은 도시의 사회 구조를 함께 만드는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다.
라투르의 관점으로 보면, “사람이 정원을 만든다”라는 일방향 문장이 아니라,
"사람과 식물, 흙과 물, 곤충과 미생물, 정책과 기술이 함께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이 다시 사람과 사회의 관계를 바꾼다."
라는 순환적인 연결의 그림이 그려진다. 이게 바로 인간과 식물이 함께 짜는 행위자-연결망에 대한 라투르의 통찰을 일상 언어로 옮긴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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