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사회를 비춘다: 풀잎 사이의 문화 이야기

📑 목차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 자연의 거울이 아니라 사회의 초상

    정원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자연, 즉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의 거울이다.

    우리가 정원을 꾸민다는 행위 속에는 단지 미적 욕망만이 아니라, 질서와 권력, 가치와 관계에 대한 사회적 신념이 숨어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정원을 보면 그 사회가 자연을 어떤 존재로 인식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절대왕정 시대의 상징이었다. 인간이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정원은 정밀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설계되었다. 가지는 일정한 각도로 잘려나가고, 연못은 완벽한 대칭으로 배치되었다. 이는 곧 자연은 권력 아래 질서화된 대상이라는 신념을 드러낸다. 반면 같은 시대의 영국 정원은 자유로운 곡선과 비대칭을 선호했다.

    그곳의 풍경식 정원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낭만적 관계를 표현한다. 같은 잎사귀와 돌이라도, 그것들이 놓인 방식은 사회의 미학적·정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정원은 그렇게 사회의 초상처럼 우리를 비춘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사회를 비춘다: 풀잎 사이의 문화 이야기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사회를 비춘다: 풀잎 사이의 문화 이야기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풀잎이 들려주는 문화의 차이

     

    동양과 서양의 정원 문화는 풀잎 하나에서도 그 차이가 느껴진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 정원은 자연의 흐름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조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신 가꾸다는 표현을 즐겨 썼는데, 여기에는 손대되 흉내 내지 않는다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담양의 소쇄원이나 경주의 백률사 정원처럼 자연의 형세를 그대로 살린 공간은 인간이 자연 속에 스며드는 이상을 보여준다.

     

    반면 서양의 정원은 빛과 시선, 통로와 시야를 계산한 인공적 질서의 세계다. 베르사유, 켄우드 하우스, 피렌체의 보볼리 정원 등은 인간의 미적 이성과 사회적 권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차이는 단순한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문화적 성찰이다.

    동양에서 정원은 수행과 사색의 공간, 곧 내면의 사회와 만나는 장소였다면, 서양에서는 정치와 권력을 연출하는 외면의 무대였다.

     

    이런 대비는 지금도 현대 도시 속에서 이어진다. 일본 교토의 료안지(龍安寺) 정원은 흙과 돌, 모래로 극도의 단순함을 표현하면서 보는 사람의 해석을 열어두는 공간이다. 반대로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처럼 현대 도시의 공공정원은 조형물과 첨단기술의 결합을 통해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의 풍경을 창조한다. 그 어느 쪽이든, 정원은 여전히 그 사회의 문화적 기후를 설명하는 언어로 남아 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잔디와 이웃 - 미국 교외의 문화풍경

    정원의 문화 이야기를 할 때 미국 교외 주택가의 잔디밭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교외(suburb) 문화에서 앞마당의 잔디는 그 자체로 시민의 도덕성과 규율의 상징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레빗타운(Levittown)과 같은 대량주택단지에서는

    잔디를 일정하게 깎아 둘 것이라는 규정이 계약서에 포함되곤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고르게 정돈된 잔디가 곧 책임감 있고 성실한 중산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잔디밭은 사회적 언어였다.

    가꾸지 않은 잔디는 게으른 집주인, 이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낳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잔디는 단지 자연이 아니라 사회적 감시의 장이 되어버렸다.

    미주리나 메릴랜드의 일부 교외 지역에서는 잔디가 일정 높이를 넘으면 이웃이 시청에 신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한 부부가 전통 잔디 대신 토종 식물로 정원을 꾸미려 하자, 주택소유자협회(HOA)동네 미관을 해친다며 제재를 가했다. 결국 이 사건은 지역 법 개정으로 이어져, 생태적 정원을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례는 정원이 얼마나 뚜렷한 사회적 규범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잔디밭은 자연과 인간,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규율이 충돌하는 문화적 현장이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한국의 정원, 변화하는 사회의 초록빛 풍경

    우리 사회에서도 정원의 의미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소유의 공간이었다. 부유층의 주택엔 조경업체가 만들어준 잔디가 깔리고, 일반 가정은 작은 화분이나 베란다 식물로 그 욕망을 대신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유의 정원’, ‘마을정원’, ‘도시농업공원같은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정원은 혼자 가꾸는 자연이 아니라, 함께 돌보는 사회의 장으로 재탄생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동체정원에서는 이웃들이 토요일마다 함께 잡초를 뽑고, 텃밭 옆에 작은 잔디 구역을 만들어 아이들이 뛰어논다.

    보통의 정원이라면 밟지 말라는 팻말이 붙었을 자리에 아이들이 앉아 책을 읽는다.

    이 변화는 사회학적으로 보면 공간의 민주화다. 정원이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관계와 돌봄, 연대의 실천이 되는 순간 사회의 문화가 바뀐다.

     

    이런 움직임은 코로나19를 거치며 더욱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로를 회복시키는 관계의 매개로 보기 시작했다.

    식물을 통해 마음의 돌봄을 실천하고, 이웃과 함께 흙을 만지며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정원은 그렇게 사회적 치유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팬데믹 이후, 정원은 치유의 언어가 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정원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격리와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많은 사람은 집 안에서 식물을 키우거나 옥상·베란다를 작은 정원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에서 반려식물과 홈가드닝이 급속히 확산된 이유도 단순히 여가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식물을 돌보며 고립된 자신을 위로했고, 자연의 순환 속에서 불안한 세계를 해석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연구에서도 팬데믹 시기 도시 거주자의 가드닝 활동이 우울·불안 감소, 관계 회복, 공동체 연대 강화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 성동구의 옥상정원 프로젝트에서는 팬데믹 기간 동안 혼자 사는 노인들이 작은 텃밭을 함께 돌보며 이웃과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늘었다.

    한 참여자는 하루에 한 번, 물을 주며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그 시간이 가장 평화로웠다고 말했다.

    그 장면 속에서 정원은 단순한 식물 공간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회적 언어, 즉 치유의 문법을 가진 장소로 자리 잡았다.

     

    정원은 말이 없지만, 그 안에서 치유가 언어처럼 작동한다.

    흙을 만지고 새싹이 돋아나는 느린 시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순환의 리듬은

    우리가 잃었던 시간의 감각을 되돌려 준다.

    식물의 성장 속도에 맞춰 호흡하다 보면, 인간의 삶도 속도를 늦추고 타인의 존재를 느낀다.

    이처럼 정원은 팬데믹 이후 불안한 사회에 잔잔한 회복의 언어로 스며든 공간이 되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풀잎 사이의 사회학 관계를 가꾸는 손길

    정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관계가 숨어 있다. 흙과 물, 햇빛뿐 아니라, 사람의 손, 제도, 기술, 문화가 함께 얽혀 있다. 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이론(ANT)에 따르면 사회를 이루는 모든 존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까지 포함된 복잡한 관계망이다.

    정원 속에서 잔디와 나무, 사람과 곤충, 관리제도와 물 공급 시스템all 이 함께 작동하며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원은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식물과 공존하며 세상을 함께 짜나가는 존재가 된다.

    잡초 하나를 뽑는 행위조차 환경, 공동체, 미학이라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재해석된다.

    이것이 바로 정원은 사회를 비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정원은 사회의 축소판이고, 풀잎 하나에도 문화의 결이 배어 있다.

    정원을 읽는다는 것은 곧 우리가 속한 사회를 읽는 일이며, 꽃잎을 바라보는 눈길 속에는 세대, 계층, 가치관의 차이가 피어난다.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그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정원 문화의 사회학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도 어딘가의 정원에서는 잔디와 사람, 이웃과 새소리가 함께 한 사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