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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평화로운 풍경 속의 사회적 언어
여름날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잔디 위를 걸어본 적 있는가. 푸른 잔디는 그 자체로 평화와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사회학적으로 보면 잔디가 깔린 정원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언어이자 인간관계의 무대다.
가정집, 아파트 단지, 공원, 학교 운동장까지—잔디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장소마다 다르다. 어떤 잔디는 가족의 주말 피크닉을 품고 있고, 어떤 잔디는 공동체의 모임 장소가 된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잔디의 관리 방식이 사회적 위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 교외의 전형적인 개인주택 잔디밭은 정돈된 외관을 통해 “나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시민”이라는 상징이 되었다. 반대로, 잔디가 자라 제멋대로 뻗으면 관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이처럼 잔디는 청결, 규율, 질서라는 사회적 가치를 시각화한 풍경이었다.

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미국 교외 잔디밭, ‘착한 이웃’의 조건
미국 교외에서 깔끔한 잔디는 중산층의 도덕성, 규범 준수, 동네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코드이다
규범을 어기면 이웃의 신고하고 압력을 행사하며 잔디가 사회적 통제의 도구가 된다
미국 교외(suburb)에 가보면, 단독주택 앞마당에 펼쳐진 잔디밭이 거의 필수 요소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 잔디는 단지 보기 좋은 초록색 바닥이 아니라, ‘괜찮은 이웃’임을 증명하는 사회적 표지판 역할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교외 주택 단지가 대량으로 조성되고, 각 집마다 잘 정돈된 앞마당 잔디가 표준처럼 설계되었다. 레빗타운(Levittown) 같은 대규모 주택 개발지에서는 잔디를 주 1회 깎아야 한다는 규정을 주택 계약서에 넣기도 했는데, 이는 ‘깔끔하게 관리된 잔디 = 책임감 있고 성실한 중산층 시민’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국의 교외 잔디는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나는 이웃과 동네 이미지를 신경 쓰는 좋은 주민이다."
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말하는 상징이 되었다. 잔디가 곧 가정의 도덕성, 성실함, 중산층 정체성을 시각화한 풍경이 된 셈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잔디를 둘러싼 이웃 간 압력과 갈등
이처럼 잔디가 상징자본이 되다 보니, 미국 교외에서는 잔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곧 이웃과의 관계, 동네의 기준에 얼마나 맞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여러 도시·교외 지역에서는 잔디의 높이, 잡초 관리, 관개(물 주기)에 대한 시 조례와 규정이 존재하고, 교외 거주자의 80% 이상이 이런 규정과 “잔디는 항상 잘 관리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규정이 실제로 집행되는 방식인데 대부분 이웃의 민원과 신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잔디를 제때 깎지 않거나, 키 큰 풀과 잡초를 그대로 두면
“동네 이미지를 망친다”는 이유로 이웃이 시청이나 관리기구에 신고하면 벌금, 시정 명령이 내려오는 식이다.
실제 사례로, 메릴랜드 주의 한 교외 지역에서 한 부부가 전통적인 잔디 대신 꽃과 토종 식물을 심어 생물다양성을 높이려 했을 때, 이웃과 주택소유자협회(HOA)에서 규정을 어겼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법적 분쟁까지 간 사건이 있다. 이 부부는 몇 년간 싸운 끝에, 토종 식재와 곤충에 친화적인 정원을 허용하도록 주법을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은 전통적인 잔디 미학과 새로운 환경 감수성이 충돌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이 사례는 다음을 잘 보여준다.
잔디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과 동네가 공유하는 규범과 압력의 문제다.
누군가 잔디를 다르게 관리하려 하면, 이웃들은 그 사람을 “규범을 어기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미묘한 왕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즉, 미국 교외의 잔디는 조용한 사회적 감시의 장이기도 하다.
도시의 잔디, 공동체의 언어로 변하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마을정원에서 조경 잔디는 때로는 “밟지 마시오” 표지판과 함께, 주민과 거리를 두는 장식용 배경이다.
반대로 공동체 잔디밭·마을정원은 함께 앉고, 걷고, 가꾸는 사람들의 관계 공간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잔디의 의미는 점점 변하고 있다. 미국 교외의 잔디가 좋은 시민과 착한 이웃임을 증명하는 관리된 풍경이었다면 한국의 공동체 정원에서 자라는 잔디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는 열린 풍경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노력해서 가꿔야 하는 공간이었던 잔디가 이제는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의 연결 공간 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부산, 대전 등 여러 도시에서는 공원이나 마을 한편에 공동체정원이 생기고, 주민들이 함께 잔디와 꽃밭을 가꾼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도시의 피로를 내려놓고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한 ‘공동체 잔디밭 프로젝트’는 그 좋은 사례다. 관리사무소가 방치했던 공터를 주민들이 함께 손으로 잡초를 뽑고, 공동 잔디밭으로 가꾸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환경 정화 활동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매주 아이들이 놀고, 어르신들이 의자를 두고 담소를 나누는 마을의 중심이 되었다. 관리의 주체가 ‘관리인’에서 ‘주민’으로 바뀌고, 잔디 위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순간, 잔디는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망을 재구성한 행위자가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미화작업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이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정원과 잔디는 사람을 연결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키우는 공간이다. 이웃과 함께 삽을 들고 흙을 만지는 행동이 신뢰와 협력을 낳고, 그것이 다시 지역사회의 연대를 강화한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이 말한 “서로 아는 관계가 사회의 기능을 유지시킨다”는 통찰이, 바로 이 잔디 위에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잔디와 권력 ― 정돈된 풍경의 이면
그러나 모든 잔디가 따뜻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잔디는 질서, 계급, 통제의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도시의 고급 주거지나 공공기관 앞의 넓은 잔디밭을 떠올려보자. 그곳의 잔디는 완벽할 만큼 균질하고 반듯하다. 하지만 “누가 그 잔디를 밟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는 잔디는 사실상 공간의 권력 구조를 시각화한 풍경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자본(Symbolic Capital) 개념을 적용해보면, 잘 관리된 잔디밭은 미학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 시스템이다. 특정 계층이 소유한 깨끗한 정원은 자연을 통제하고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자기의 사회적 위상을 드러낸다. 반면 공동체 잔디밭처럼 다소 거칠지만 누구나 드나드는 공간은 소유의 질서보다 공유의 윤리를 표현한다. 이 두 풍경의 대비는 도시 내부의 사회적 다양성과 불평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사회학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의 대형 아파트 단지와 성북구의 마을정원 프로젝트를 비교해 보면,, 잔디의 의미가 얼마나 다르게 작동하는지 쉽게 느낄 수 있다. 전자는 완벽하게 유지된 녹지로 세련된 이미지를 유지하지만, 접근의 자유가 제한된다. 후자는 서로의 손때가 묻은 다소 불규칙한 잔디이지만, 주민들의 추억과 정이 쌓인다. 정원 속 잔디가 사회적 위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언어로 작동하는 것, 그것이 ‘잔디의 사회학’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잔디 위의 대화 ― 돌봄과 공존의 감각
정원은 단지 식물의 생태만이 아니라 관계의 생태학이다. 잔디를 가꾸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돌봄의 실천이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사람은 기다림과 책임을 배운다. 그리고 그 잔디를 함께 돌보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이웃이라는 개념을 재발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가드닝 세대가 늘어나고, 아파트 발코니나 옥상텃밭이 늘어나는 것도 결국 돌봄과 연결의 욕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의 한 마을정원 사례를 보면, 주민들이 번갈아 잔디를 손질하며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고, 아이들이 그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어르신들이 옛이야기를 나눈다. 잔디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회적 매개체로 작동한다.
이런 현상은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잔디, 사람, 도구, 물, 햇빛, 관리제도—all 이 서로 연결되며 정원의 모습과 분위기를 만든다. 여기서 잔디는 단지 가꾸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기능한다. 잔디가 자라는 속도, 계절의 변화, 그 위에서 뛰고 걷는 사람의 발자국—all 이 정원의 사회적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사회를 닮은 정원 ― 잔디와 이웃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
결국 잔디는 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거기에는 질서와 돌봄, 배제와 연대가 모두 공존한다. 누군가에겐 잔디가 단정한 미적 기준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함께 웃는 이웃의 자리다. 중요한 건 어떤 잔디가 더 아름답냐가 아니라, 그 잔디 위에서 어떤 관계가 자라나느냐이다.
사회학적 시선으로 볼 때, 정원은 ‘개인적인 취향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장(場)이다. 잔디 한 조각을 가꾸는 일은 곧 사회를 돌보는 연습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을 넘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정원은 작은 사회다. 잔디는 그 사회의 녹색 언어다. 그리고 그 위를 함께 걷는 사람들은 오늘도 무심히 사회를 가꾸고 있는 공동의 정원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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