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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으로 읽는 정원문화의 역사: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동맹

📑 목차

    정원문화의 역사는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가장 오래된 동맹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두려워·사랑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문화사다. 아래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를 가로지르며 정원과 인간의 동맹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새로운 사례 중심으로 살펴본다.

    정원사회학이 말하는 감각의 공간, 초록이 깨우는 오감
    정원사회학이 말하는 감각의 공간, 초록이 깨우는 오감

     

     

    에덴과 파라다이스: 정원의 신화적 탄생

    정원과 인간의 동맹은 현실의 역사보다 먼저, 신화와 상상력 속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전통의 ‘에덴동산’ 서사는, 신과 인간이 함께 거닐던 공간을 정원으로 그린다.

    고대 페르시아의 파리다이자(pairidaeza)’둘러싸인 정원을 뜻하며, 여기서 오늘날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페르시아 왕들은 사막과 건조한 대지 위에 인공적인 오아시스 정원을 만들었다. 사각형 구획을 십자형 수로가 가르는 차하르 바그(Chahar Bagh) 스타일은, 물과 그늘, 과일나무가 있는 정원을 이 땅 위의 낙원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여기서 정원은 자연과의 동맹이라기보다, 신의 축복을 모방한 정치적·종교적 상징에 가까웠다.

    고대 이집트의 귀족 저택 벽화에서도 연못과 나무, 포도 넝쿨, 의자와 정자가 함께 그려진 정원을 볼 수 있다. 나일강의 범람을 이용해 주변에 과일나무와 채소를 키우며, 신에게 바칠 제물과 사람들의 식량을 동시에 확보했다. 정원은 생존과 종교의 접점이었던 셈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시민사회가 만난 정원

    고대 그리스에서 정원은 단순한 개인의 사치가 아니라, 철학과 교육, 시민정신의 무대였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같은 철학 학교는 도시 근교의 숲과 정원, 산책로를 끼고 있었다.

    이곳에서 산책하며 토론하는 페리파토스(peripatos)”, 정원이 생각하는 몸짓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로마에 이르러 정원문화는 더욱 일상화된다. 부유한 시민의 도무스(domus, 도시 주택)와 빌라(villa, 교외 별장)에는 중정(아트리움)과 페리스틸 정원이 거의 필수였다.

    가운데 연못과 분수, 그 주변에 월계수·올리브·장미가 심어졌고, 벽에는 가짜 정원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장식되기도 했다.

    이는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도시 생활 속에 작은 휴식과 위신을 더하려는 시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로마의 정원이 지중해 상업 네트워크와 함께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동방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식물과 과일나무를 심는 것이 부의 상징이 되면서, 정원은 제국의 확장과 교역망을 시각화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연과의 동맹이 곧 제국의 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 것이다.

     

    신앙과 치유의 동맹인 수도원 정원과 이슬람 정원: 신앙과 치유의 동맹

    중세 유럽에서 정원의 중심은 귀족의 성이 아니라, 수도원이었다. 수도원 안의 네모난 중정은 십자가 모양의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는 약초·채소·과일나무가 질서 있게 심어져 있었다.

    이 정원은 수도사들의 식량과 약재를 공급하는 기능적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기도와 묵상의 자리이기도 했다.

    자연을 돌보는 일은 곧 영혼을 돌보는 일로 여겨졌고, 가꾸기는 노동이면서 동시에 영적 수련이었다.

    같은 시기 이슬람 세계에서는 페르시아 정원 전통을 계승·변형한 궁정 정원과 도시 정원이 꽃핀다. 특히 안달루시아의 알람브라 궁전 내 나스르 궁의 파티오들(사자들의 안뜰, 도금나무의 안뜰)은 물과 그림자, 아치와 기둥이 어우러진 정원문화의 정수다.

    중앙의 분수와 수로는 꾸란이 말하는 강 아래로 흐르는 낙원을 상징했다.

    정원은 신의 자비와 풍요를 눈앞에 구현한 공간이었으며, 시인과 철학자, 신학자들의 사유 공간이기도 했다.

     

    정원 사회학에서 읽는 정원문화는 자연과 신앙이 맺는 미적·정치적 동맹의 산물이다. 물을 통제하고 그늘을 만드는 기술은 곧 권력과 재정의 상징이 되었고, 정원은 신의 축복을 받은 통치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구였다.

     

    동아시아 정원의 산수와 함께 사는 법

    동아시아에서 정원은 자연과 인간이 맺은 동맹을 가장 섬세하게 드러낸다. 특히 중국·한국·일본의 정원은 자연을 복제하기보다 축소된 우주, 농축된 산수(山水)를 추구했다.

    중국 남부의 쑤저우 고전 정원(졸정원, 유원 등)은 작은 공간 안에 산, , 누각, 다리를 촘촘히 배치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3차원으로 펼친 것처럼 설계되었다.

    차경(借景)’ 기법을 통해 밖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창문··프레임을 활용해 시야를 연출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빌려 쓰는 관계라는 동양적 자연관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도성 밖에 별서정원을 마련해 자연과 벗하는 삶을 실천했다. 강진 백운동 원림, 완도 부용동 정원 등은 산과 물, 바위와 나무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지형을 살려 가꾸는 방식을 택했다.

    정원은 학문과 시문, 벗과의 담론이 이루어지는 야외 사랑방이었다.

    자연과 동맹을 맺고 권력과 거리를 두려는, 조선 선비 특유의 삶의 태도가 정원문화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일본의 정원은 선종(禪宗)과 깊이 연결된다. 돌과 모래로만 구성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물 한 방울 없이 물의 흐름을 표현하며, 형태가 아닌 여백으로 의미를 전하는 문화를 보여준다. 정원은 자연을 지배하기보다는, 자연의 상징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맹의 공간이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시민과 도시의 동맹인 근대 이후 정원문화

    근대에 들어 정원문화는 귀족과 수도원, 궁궐을 넘어 도시 전체의 문화로 확장된다. 산업혁명으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밀집된 노동환경과 열악한 위생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에 대한 초기 해법 중 하나가 공원과 공공정원이었다.

    영국 버킹엄셔의 버켄헤드 공원(1847)은 세계 최초의 공공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센트럴 파크(1858, 프레더릭로 올름스테드 설계)도시 속 모든 계층의 시민을 위한 공공정원을 목표로 했다.

    이 시기 정원문화는 더 이상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도시 정원과 공원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식과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와 동맹을 맺는 공간이 되었다. 자연과 시민이 만나 건강과 여가를 회복하는 장소로서의 정원이 등장한 것이다.

     

    한편, 근대 이후 정원은 국가 정체성과 민족 문화를 드러내는 상징으로도 활용된다.

    영국식 잔디와 장미 정원은 제국의 취향과 기후를 보여주는 문화 브랜드가 되었고,

    일본식 정원은 19~20세기 서구 세계에 동양의 미학과 철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세계박람회와 국제박람회에서 각 나라가 만든 정원은, 자연과의 동맹을 통해 자국 문화를 홍보하는 외교적 도구였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20세기 후반: 반문화, 생태주의, 그리고 정원

    20세기 후반, 특히 1960~70년대 이후 정원문화는 또 한 번 커다란 전환을 맞는다. 환경운동과 반문화(counterculture), 생태주의가 등장하며, 정원은 소비와 과시의 대상이 아니라 저항과 대안의 실천 공간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 운동이 확산되었다.

    버려진 도시 공터, 철도 인근, 폐공장 주변에 주민들이 몰래(또는 허가를 받아) 텃밭을 만들었다.

    이는 도시 빈곤, 식량 불평등, 공동체 붕괴에 맞서는 푸드 저스티스(food justice)” 운동과 연결되었다.

    1970년대 이후 독일·영국 등지에서 시작된 생태정원·자연주의 정원은

    잔디 대신 야생화와 토종 식물을 심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최소화하며,

    곤충과 새, 작은 동물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시기 정원 가꾸기는 더 많이, 더 화려하게가 아니라 덜 개입하고, 더 공존하는 방식으로 이동한다. 자연과의 동맹을 회복하려는 시도로서, 정원은 작은 생태계이자 정치적 공간이 되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21세기: 팬데믹, 도시, 그리고 정원의 재발견

    21세기에 들어 정원문화는 도시화·기후위기·팬데믹이라는 세 가지 큰 흐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초고밀도 도시에서 옥상정원, 수직정원, 발코니 정원이 늘어나며, 정원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확장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가든 시티정책, 도쿄·서울의 옥상녹화 프로젝트 등은, 도시 계획 차원에서 자연과의 동맹을 다시 체결하려는 시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정원을 다시 치유와 연결의 공간으로 떠올려 놓았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자, 전 세계적으로 반려식물과 홈가드닝이 크게 증가했다.

    사람들은 팬데믹 불안 속에서 씨앗을 심고 새 잎을 기다리는 일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공동체 정원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바깥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함께 흙을 만지는 경험은 우리는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되살렸다. 정원은 이렇게 고립된 사회를 다시 엮는 풀과 흙의 플랫폼이 되었다.

    동시에 정원은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현장이다.

    예전보다 더 잦은 폭우와 폭염, 예상치 못한 시기의 서리와 태풍은 정원 가꾸기 패턴을 바꾸고 있다.

    도시농업, 레인 가든(빗물정원), 탄소 흡수 식재 등은, 정원문화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활 속 실천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원 사회학에서 읽는 정원문화가 말해주는 것: 동맹의 미래

    정원 사회학에서 읽는 정원문화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인류와 자연의 관계는 한 번도 단순했던 적이 없다.

     

    때로 정원은 통제와 과시의 도구였다.

    때로는 명상과 수양의 공간이었고,

    또 때로는 치유와 저항, 연대와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일관된다. 정원은 언제나 인간이 자연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 것인가를 시험해 보는 작은 모델, 축소된 세계였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원문화는 단지 예쁜 풍경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연을 소유할 것인가, 함께 돌볼 것인가.

    정원을 개인의 취향으로만 채울 것인가, 공동체와 다른 생명들을 위한 공간으로 열어둘 것인가.

    정원을 통해 과거의 문화를 보존할 것인가, 새로운 생태적·사회적 실험을 할 것인가.

    정원 사회학에서 읽는 정원문화의 역사는, 결국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동맹의 연대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떻게 정원을 만들고, 어떻게 가꾸느냐는 이 오래된 동맹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다.

    지금 손에 쥔 작은 모종 하나, 화분 하나, 골목의 작은 화단 하나가 사실은 인류와 자연이 써 내려가는 긴 이야기의 최신 장 일지 모른다. 그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이어갈지는, 정원을 가꾸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