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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으로 본 AI의 시선: 알고리즘은 정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 목차

    AI가 정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AI이해한다고 말하는 행위는 인간이 흙 냄새를 맡고, 계절의 빛을 느끼며, 그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발견하는 그 이해와 같은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원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삶과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다시 묻는 철학적 질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원 사회학은 인류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행위자, AI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AI의 시선 알고리즘은 정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원 사회학으로 본 AI의 시선 알고리즘은 정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원 사회학의 출발점: 정원은 관계의 장이다

    정원 사회학의 기본 전제는 분명하다. 정원은 단지 아름답게 가꾸어진 녹색 공간이나 유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정원은 인간, 자연, 사회가 얽히고 부딪히며 함께 만들어내는 관계적 공간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왕실 후원 창덕궁 후원은 단순한 경관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모방함으로써 인간의 권력과 도덕적 질서를 동시에 표현한 사회적 텍스트였다. 마찬가지로 일본 교토의 사찰 정원은 명상과 수행의 장으로서 종교적, 철학적 관계망이 응축된 공간이다.

     

    이처럼 정원은 권력과 계급, 노동과 돌봄, 취향과 기억, 그리고 시간을 품고 있다. 하지만 AI에게 정원이란 이 복잡한 사회적 의미망이 아닌, 수집되고 처리될 수 있는 데이터의 총합으로 인식된다. 이미지 데이터, 토양의 산도, 식물의 생육 곡선, 물 사용량이나 일조시간과 같은 측정 가능한 변수들이 AI의 시야 속에서 정원을 구성하는 전부가 된다. 이때 정원은 관계가 아니라 객체로 전환된다. 정원을 사회적 장면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관과, 정원을 계산 가능한 시스템으로 환원시키는 AI의 세계관은 이 지점에서 충돌한다.

     

    AI의 인식 방식: 정원은 데이터의 집합으로 환원된다

    AI는 정원을 다양한 수치와 패턴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한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공원에 AI 기반 유지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센서가 식물의 생장 속도를 측정하고, 병해 발생 확률을 예측하며, 관수량과 일조량을 자동 조절한다. 또 딥러닝 모델은 대중의 미적 선호도를 분석해 색채 조합이나 식재 패턴의 효율성을 산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술은 관리 효율성과 경제적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적 시선에서 보면, 이러한 데이터 중심의 이해는 정원의 사회적 층위를 제거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수치로 환원된 정원은 살아 있는 시간이 사라진 정원이다. 한 마을의 커뮤니티 정원에서 이웃들이 함께 심은 나무 한 그루는 단순한 수목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함께 흘린 노동의 기억을 품고 있으며,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존재이다. AI는 수목의 생육 상태를 감지할 수 있지만, 그 나무가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읽어내지 못한다.

     

    감각의 문제: AI는 정원을 느낄 수 없다

    정원 사회학은 정원을 감각의 공간으로 이해한다. 정원을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흙의 온기를 손끝으로 느끼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를 듣고, 비 온 뒤 묻어나는 풀 냄새를 들이마시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의 각도를 몸으로 기억하는 일이다. 이러한 감각의 축적은 인간에게 정원이 단순한 풍경을 넘어 존재의 장소가 되게 한다.

     

    AI는 이 감각을 숫자로 변환함으로써 해석한다. 온도는 단위로, 습도는 %, 풍속은 m/s로 표현된다. 그러나 감각이 수치로 변환되는 순간, 그 경험의 주관성과 기억의 층위는 사라진다. 조선 후기 문인들이 정자 옆 연못에서 매화 향을 맡으며 쓴 시구는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다. 정원 사회학은 인간이 정원을 사랑하는 이유가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감각의 경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AI는 정원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느낄 수는 없다.

     

    좋은 정원의 기준: 누가 판단하는가

    AI는 알고리즘을 통해 좋은 정원의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질병이 없고,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시각적으로 균형 잡혀 있으며, 유지 비용이 최소화된 정원이 그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일부 도시에서는 이런 모델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정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시민 참여형 정원 관리 시스템에서 AI가 경관 품질을 진단한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그러한 최적화된 정원을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시골마을의 할머니가 수십 년간 가꾸어온 마당의 정원은 잡초가 많고 모양도 불균일하지만, 그 안에는 생활의 리듬과 애착의 흔적이 스며 있다. 아이들에게는 여름의 기억, 어른들에게는 돌봄의 상징이 된다. 인간에게 좋은 정원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의 의미를 품은 공간이다. 정원 사회학은 이렇게 묻는다. ‘좋음이란 누구의 기준인가? AI는 평균과 효율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인간의 정원 경험은 예외와 편차 속에서 꽃핀다.

     

    정원 노동의 의미: AI가 보지 못하는 돌봄의 시간

    AI는 정원 노동을 점검 가능한 업무로 인식한다. 일정한 주기로 관수를 하고, 병충해를 감지하고, 예지 정비를 수행하는 시스템 구성 요소로서 분석한다. 하지만 정원 사회학은 정원 노동을 돌봄의 행위로 본다. 매일 아침 물을 주며 싹이 트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가지를 자르며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 실패한 식물을 다시 심으며 인내를 배우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다.

     

    예컨대, 유럽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수행의 한 방식으로 정원을 돌본 이유는 일의 효율성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정원은 신과의 대화의 공간이자, 마음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장소였다. 현대 사회에서도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도시 정원은 경제적 효율보다는 관계의 지속성과 돌봄의 연대를 상징한다. AI는 노동 시간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함께 돌보는 시간에서 생겨나는 관계의 의미를 대신 만들어낼 수는 없다.

     

    스마트 가든과 감각의 외주화

    스마트 가든 기술은 분명히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 자동 관수 시스템은 식물의 생육을 안정시키고, 센서 기반 모니터링은 관리자의 부담을 줄인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편리함이 감각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수록, 정원을 통해 얻는 감각적 경험 역시 약화된다. 정원을 직접 돌보지 않아도 앱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AI가 알아서 최적의 물주기와 시비 시기를 알려주지만, 흙의 수분을 손끝으로 느끼며 얻는 제때의 감각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감각이 기술에 위탁되는 현상, 감각의 외주화로 이어진다. 결국 스마트 가든은 인간에게 물리적 시간의 해방을 제공하지만, 감각의 빈자리를 남긴다.

     

    정원과 서사: AI는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정원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깃든다. 어떤 나무는 가족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심어졌고, 어떤 연못은 마을의 오랜 신화를 품고 있으며, 어떤 돌 하나는 누군가의 이별의 표식으로 남아 있다. 이런 서사는 정원이 단순히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시간의 집합체임을 보여준다.

     

    AI는 이러한 이야기의 연속성을 포착하기 어렵다. 패턴은 학습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미묘하고 느리며, 종종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예컨대 경복궁 교태전 뒤뜰의 아미산 화계는 자연주의적 미감의 결과물이 아니라, 왕비의 공간과 후원 사이에 담긴 의례와 세계관의 복합적 상징이다. 이러한 맥락은 데이터로는 완전히 복원되지 않는다. 정원 사회학은 정원을 문화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는 텍스트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체험하지는 못한다.

     

    맺은 말: AI는 정원을 관리할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AI는 정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예측 모델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생태적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정원과 함께 늙어갈 수는 없다. 정원 사회학이 강조하는 정원의 본질은,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으며 자신을 조율하는 행위에 있다.

     

    결국 우리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서 있다. AI가 정원의 노동과 기억, 감각을 점점 대신하는 지금, 인간은 정원을 단순한 데이터의 교환소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생명과 관계의 장소로 남겨둘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정원 사회학은 바로 이 질문인 정원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