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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데이터가 될 수 있는가: AI 시대, 정원 사회학의 근본 질문

📑 목차

    정원은 물론 데이터가 될 수 있지만, 데이터가 된 정원은 정원의 전부가 아니다. AI 시대의 정원 사회학은 바로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묻는 작업이다.

    정원은 데이터가 될 수 있는가 AI 시대, 정원 사회학의 근본 질문
    정원은 데이터가 될 수 있는가 AI 시대, 정원 사회학의 근본 질문

    정원 사회학: 정원은 관계의 집합이다

    정원 사회학은 정원을 단순한 녹지나 미적 경관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기술과 권력이 얽힌 사회적 관계의 장으로 본다. 도시 주택가의 앞마당, 왕실의 후원, 공동체 텃밭, 요양시설의 치료정원은 모두 식물과 흙, 물과 돌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관계와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도시 집약화 속에서 등장한 커뮤니티 가든은 단순한 식량 생산 공간이 아니라, 이웃 간의 연대와 자치, 환경 감수성을 길러내는 정치적·문화적 실천의 무대가 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정원은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돌보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적 장면으로 구성된다.

     

    데이터가 된 정원: 알고리즘의 시선

    AI는 정원을 다양한 수치와 패턴으로 받아들인다. 토양 센서는 수분과 온도, pH, 영양분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기상 데이터는 강수량과 일조시간을 기록한다. 이미지 인식 알고리즘은 병해충 여부, 잎의 변색, 생육 상태를 분석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스마트 관수 시스템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물 주기와 양을 조절한다. 실제로 가정용 정원에서는 AI 스프링클러와 토양 센서, 식물 진단 앱이 결합된 스마트 가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사용자는 앱 화면을 통해 자신의 정원을 대시보드 형태의 데이터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정원을 관리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정원은 더 이상 우연과 실패, 돌봄의 시행착오가 축적된 공간이라기보다, 최적화 가능한 환경 제어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AI 알고리즘은 식물 생존률·에너지 사용 효율”, “미관 선호도를 종합해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식재 조합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시선은 정원을 사회적·감각적·서사적 공간이 아니라, 기술·경제 시스템의 하위 모듈로 환원하는 효과를 낳는다.

     

    감각과 몸의 경험: 숫자로 번역되지 않는 정원

    정원 사회학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정원이 만들어내는 감각적·체화된 경험이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흙의 질감을 손으로 느끼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의 색과 기울기를 눈으로 기억하며, 풀과 나무의 냄새, 비 온 뒤 공기의 무게, 바람의 소리를 몸 전체로 받아들인다. 프랑스 오트가론 지역 도시 정원을 대상으로 한 민족지 연구는 정원에서의 감각 경험이 자연과 타인과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보여준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역시, 집 주변 정원과 할당 정원이 삶의 평온함과 정서적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치유적 환경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AI는 이러한 감각을 데이터 포인트로 변환한다. 흙의 촉감은 토양 수분과 질감 지수로, 바람은 풍속과 방향 값으로, 향기와 공기의 선선함은 온도와 상대습도, 휘발성 유기화합물 농도 등으로 기록된다. 물론 이러한 데이터는 식물 건강을 관리하고,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향상시키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감각이 숫자로 번역되는 순간, 정원이 인간에게 가지는 주관적 기억과 정서적 깊이는 통계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정원을 걷고, 만지고, 맡고, 듣는경험은 사용자의 몸에 남지만, AI에게는 오로지 측정값의 흐름만이 의미를 가진다. 정원 사회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원을 데이터로만 이해할 때, 정원의 본질적인 일부가 소거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사례 1: 지능형 정원, 나무와 대화하는 기술

    최근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 등장한 ‘Intelligent Garden’ 프로젝트는 AI 시대 정원 경험의 전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이 정원에서는 나무와 토양에 부착된 센서가 수분, 산도, 성장 속도, 기온, 공기 질, 기울기 등을 측정하고, 이 데이터가 AI를 통해 자연어 메시지로 변환된다. 방문객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오늘 나는 물이 조금 부족해”, “토양 산도가 높아졌어와 같은 메시지를 받으며, 마치 나무와 대화하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이 프로젝트는 정원과 인간의 소통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관람객은 눈으로 보기 어려운 나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식물의 요구를 언어로 접하면서 새로운 공감의 계기를 갖는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소통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매개한 간접 경험에 의존한다. 관람객은 손으로 흙을 만져보거나, 나무 껍질의 거칠기를 느끼거나, 잎의 처짐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대신, 화면에 뜬 데이터와 텍스트를 통해 나무의 상태를 파악한다. , 감각의 일부가 알고리즘과 인터페이스에게 외주화되는 것이다.

     

    사례 2: 스마트 홈 가든과 돌봄의 자동화

    가정용 스마트 가든 시스템은 정원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보다 일상적인 사례이다. AI 관수 시스템은 날씨 예보와 토양 센서 정보를 바탕으로 자동으로 물을 주고, AI 앱은 사진 한 장으로 병해충을 진단하며, 실내 수경재배 장치는 물과 영양분, 조명을 알아서 조절한다. 사용자는 오늘 물을 줬는지”, “비료를 너무 많이 준 것은 아닌지를 걱정할 필요가 줄어들고, 앱이 보내는 알림에 따라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정원 관리를 마칠 수 있다.

     

    이러한 자동화는 여가 시간이 부족한 도시 생활자에게 분명 큰 장점이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은 그럼 무엇이 사라지는가를 묻는다. 정원을 매일 둘러보며 미세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관찰의 시간, 식물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보며 스스로 원인을 추적하고 배우는 시행착오의 경험,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잡초를 뽑으며 느끼는 노동의 리듬이 줄어드는 것이다. 정원 노동은 단순한 생산 작업이 아니라, 책임감과 애착, 실패와 회복을 몸으로 학습하는 돌봄의 실천이다. AI는 이 노동을 효율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만들어내던 관계성과 의미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정원 사회학: 서사와 기억의 층위를 읽다

    정원 사회학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정원이 단지 현재의 상태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함께 품은 서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원에는 왜 이 나무가 여기 서 있는지”, “왜 이 자리에 굳이 불편한 동선의 화단이 남아 있는지”, “왜 해마다 같은 곳에 같은 꽃을 심는지와 같은 서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데이터베이스에 쉽게 기록되지 않는다.

     

    도시 사회학 연구는 주택과 정원이 가족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무대임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어떤 집의 뒷마당에 서 있는 오래된 과일나무는 경제적 가치로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 가족에게는 이사를 여러 번 다니는 동안 유일하게 남은 옛집의 조각이자, 함께 수확을 나누던 기억의 매개체일 수 있다. 이러한 서사적·정서적 가치들은 물주기 횟수나 수확량, 유지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정원 사회학은 인터뷰, 참여관찰, 민족지 연구등 질적 방법을 통해 이 보이지 않는 층위를 읽어내려 한다. AI가 정원의 표면을 정밀하게 분석할수록, 사회학은 정원의 이면에 숨은 이야기와 기억을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생긴다.

     

    데이터와 정원 사이의 긴장: 무엇을 볼 것인가

    정원을 데이터로 바라보는 시선과 사회적·감각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배타적인가, 아니면 상호 보완적인가. 정원 사회학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기후변화 시대에 특히 중요하다. 급격한 기상이변 속에서 정원의 생태를 유지하려면, 토양·수분·기온 변화에 대한 세밀한 모니터링과 예측이 필수적이며, AI는 이 지점에서 강력한 도구가 된다. 또한 공동체 정원에서 AI 센서와 앱을 활용하면, 참여자들이 서로의 구역 상태를 쉽게 공유하고, 환경교육 콘텐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원 사회학이 경고하는 것은, 데이터가 정원을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는 순간이다. 정원을 수치로만 해석하면, 권력관계와 계급, 젠더, 돌봄 노동, 문화적 차이, 기억과 애도의 감정 등 데이터로 포착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분석에서 누락된다. 예를 들어,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유휴 공간으로 분류된 작은 마당이나 텃밭이 실제로는 노년층에게 중요한 사회적·정서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단지 경제적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쉽게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데이터 중심의 평가 기준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치를 측정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주변화한다.

     

    AI 시대 정원 사회학의 역할

    AI가 정원의 언어를 숫자와 알고리즘으로 옮겨 적는 시대에, 정원 사회학은 두 가지 과제를 안게 된다. 하나는 AI와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원 경험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다. 스마트 가든, 지능형 공원, 센서가 촘촘히 박힌 도시 녹지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연과 관계를 맺는지, 누가 데이터에 접근하고 통제하는지, 어떤 이용자 집단이 배제되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데이터로 포착되지 않는 정원의 의미를 집요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감각과 몸의 기억, 상실과 치유의 서사, 돌봄의 시간과 실패의 경험, 공동체가 쌓아온 상징과 의례는 정원 사회학이 계속해서 기록하고 해석해야 할 영역이다.

     

    정원은 분명 데이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원을 오로지 데이터로만 이해하는 순간, 정원은 인간과 자연, 사회가 함께 시간을 살아가는 장소라는 본질을 잃게 된다. AI는 정원의 상태를 설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나무의 목소리를 번역해줄 수 있다. 하지만 AI는 인간 대신 정원에서 계절을 견디고, 실패를 받아들이며, 느리게 늙어갈 수 없다. AI 시대의 정원 사회학이 던지는 근본 질문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정원을 데이터로 다루면서도, 여전히 삶과 관계의 공간으로 남게 하려면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