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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가 스며드는 오후, 한 장의 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사람의 마음도 가만히 그 리듬을 따라 흔들린다. 정원은 그 자체로 언어 없는 이야기꾼이다.
누군가는 상처를 안은 채, 누군가는 고요를 찾아 정원에 들어선다. 그러나 머무는 동안 우리는 ‘나’에서 ‘우리’로 옮겨갑니다. 정원은 한 개인의 안식처이자, 그 사이를 잇는 사회적 대화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치유의 정원’이란 단지 몸과 마음의 회복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가 다시 연결되는 장소이다. 이 글은 정원 사회학의 관점으로 그러한 연결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흙속의 씨앗처럼 작은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회복으로 피어나는지 말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바라본 ‘치유의 정원’이라는 개념
정원은 흔히 ‘자연의 축소판’ 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자연’이라 불린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Sociology of Gardens)은 그 이상의 의미를 본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원은 사람, 공간, 시간, 기억이 교차하는 사회적 실천의 장이다. 즉, 정원은 누구의 것이냐보다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치유의 정원(healing garden) 역시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식물의 생장, 흙의 냄새, 바람의 감촉, 돌의 감촉은 단순한 감각 자극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지닌 치유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원 정원에서 병상 환자가 창밖의 나무를 바라볼 때, 그 경험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돌봄의 사회적 구조’와도 맞닿는다. 즉, 정원은 사회적 치유의 매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몸을 회복하는 정원 사회학: 감각과 생리의 회복
정원 사회학의 시각에서 보자면 몸은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생물학적이자 사회적 존재다. 정원에서의 치유는 단순히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의 습관, 호흡, 감각이 자연의 리듬 안으로 재조정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나투르플렉스(Naturpleje)’ 정원 프로그램은 정신질환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일상 회복을 목적으로 한 정원 치유 모델이다 참가자는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고, 물을 주며, 계절의 순환을 몸으로 느낍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심박수 안정,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그리고 자율신경 균형을 돕는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신체적 효과 그 자체보다 그 행위에 담긴 사회적 경험이다. 누군가와 함께 흙을 고르고, 자라나는 식물을 보살피는 행위 속에서 몸은 단순히 생리적 안정뿐 아니라 공동체적 리듬과 다시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서울시의 치유의 정원 조성사업에서는 노인복지시설, 학교, 병원 등 공공공간에 정원을 조성하여 일상 속 신체 회복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원예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년층은 식물을 돌보며 자신의 노화된 몸을 ‘쓸모 있는 존재’로 재인식한다. 정원은 이렇게 몸의 사회적 존엄을 회복시키는 작은 무대가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정원 사회학: 정서적 치유의 사회적 구조
정원은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장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감정 또한 사회적 구성체이다. 정원이 개인의 내면을 치유한다는 말은 결국 사회 속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관계 안에서 회복한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
영국 잉글랜드의 ‘메기스 가든(Maggie’s Garden)’이 그 좋은 예이다. 암센터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원으로서, 건축가와 정원 디자이너가 협력하여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따뜻한 경관’을 만들었다. 이곳의 정원은 나무와 돌, 물의 흐름이 중심이지만, 환자들이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자연은 마음을 달래는 배경이 아니라, 공유된 고통과 공감이 일어나는 무대로서 기능하다.
한국에서도 ‘마음정원’, ‘상담정원’ 등의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치유정원’은 마음의 안정뿐 아니라 대화의 장으로 설계되었다. 나무 사이의 벤치, 햇살이 드는 산책로, 심리치료 공간과 연결된 정원 구조 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전환점을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경험하게 한다. 정원 사회학은 이런 맥락에서 정원의 정서적 치유를 사회적 감정 회복으로 해석한다.
사회를 잇는 정원 사회학: 공공성과 공동체적 회복
정원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정원이 개인의 사적 영역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잇는 공간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정원이 부유층의 사적 공간에서 공공적 장소로 전환된 것은, 단순한 공간 이용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치유의 사회화’ 현상으로 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도쿄의 ‘하나노엔(Hananoen)’ 프로젝트는 발달장애인, 노인, 지역주민이 함께 가꾸는 정원으로, 참여자 각자가 역할을 맡아 정원을 유지한다. 그곳에서 ‘노동’은 생계가 아닌 존재의 의미 회복, 즉 사회적 치유의 과정으로 인식된다.
한국의 ‘마을정원 프로젝트’도 비슷하다. 부산 감천동이나 서울 성미산 마을에서 주민들이 공동재배 공간을 운영하면서 갈등이 완화되고 지역 공동체 의식이 되살아난 사례가 보고되었다. 정원 사회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때 정원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유대의 매개체이며, ‘함께 살아가는 기술(social gardening)’의 실험장이 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거리두기’ 속에서도 ‘연결’을 갈망했다. 팬데믹 시기의 ‘공유정원(joint garden)’이나 ‘발코니 정원’의 유행은 정원이 사회적 단절을 완화하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정원 사회학은 이를 생태적 치유를 넘어 사회적 회복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전통정원에서 바라본 정원 사회학의 치유
한국의 전통정원은 본래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했다. 오래된 별서정원이나 사찰정원, 서원정원 등은 사람이 자연과 교감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장소이자, 나아가 공동체의 가치가 구현되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담양 소쇄원은 주인의 은둔처임과 동시에, 벗들이 찾아와 시를 나누는 사회적 소통의 정원이었다. 이곳에서의 ‘치유’는 병의 치료보다는 삶과 관계의 진정성 회복에 가까웠다. 즉,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 안에서 자기 자리를 다시 찾는 것이다.
정원 사회학은 소쇄원, 부용정, 낙선재 후원과 같은 공간을 조선시대의 사회적 치유 장소로 재해석할 수 있다. 정원은 단지 귀한 자들의 여가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재구성하는 상징적 무대였다. 이런 전통적 관점은 현대의 치유정원이 추구하는 몸과 마음, 사회 통합이라는 개념과 근본적으로 통한다.
정원 사회학이 제안하는 치유의 미래
오늘날 정원은 단순한 녹지나 미적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복원력(social resilience)을 키우는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 사회, 정신건강 위기, 환경 불평등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결국 삶의 관계망이 훼손된 결과이기도 한다. 이때 정원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연결과 회복의 사회적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다.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의 치유정원은 기술이나 장식이 아니라 참여, 공감, 돌봄의 관계 구조 속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누구나 손을 얹고, 대화하며, 계절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정원은 비로소 치유의 사회적 실천이 된다.
결국 치유정원은 ‘몸을 돌보는 정원’, ‘마음을 치유하는 정원’을 넘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정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원 사회학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가장 따뜻한 비전이다.
맺은 말
정원의 한 그루 나무는 그 자체로 세상을 닮았다. 한 그루의 잎이 자라나기 위해 흙과 물, 빛과 공기, 그리고 손길이 필요하듯, 인간의 회복 역시 관계와 돌봄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정원 사회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정원은 혼자 머무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의 장소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과 타인을 향한 마음을 배우며, 결국 사회를 새롭게 심는다.
치유의 정원은 오늘도 조용히 자라고 있다. 흙 아래에서, 관계의 밭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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