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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정원을 통한 사회 치유: 마음의 생태학

📑 목차

    정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다. 사회적 트라우마, 정신건강 문제, 그리고 붕괴된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실질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팬데믹 이후 세계 곳곳에서 불안과 우울이 증가하며 우리는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때 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치유의 장소로 떠올랐다.

    정원은 사람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공간이다. 이는 단순한 힐링의 이미지가 아니라, 과학적·사회적 데이터와 현장 경험으로 입증된 치유 시스템이다. 심리, 공동체, 도시, 재난 회복에 이르기까지 정원은 마음의 생태학(Ecology of Mind)’을 작동시키며 사회 전반의 회복력을 높인다. 이 글에서는 팬데믹과 재난, 전쟁 트라우마, 도시 고독, 정신질환 관리, 그리고 글로벌 사례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정원이 어떻게 사회 치유 인프라가 되는지를 살펴본다.

     

    정원을 통한 사회 치유
    정원을 통한 사회 치유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팬데믹의 정신적 후유증

    정원은 어떻게 무너진 일상에 숨을 불어넣었는가

    코로나19 시기는 각자가 자신의 방에 갇혀 살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걷지 못했고, 자연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일상의 리듬은 깨지고 마음의 균형은 무너졌다. 이때 정원은 다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창이 되었다.

    영국 RHS 정원의 힐링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통행이 제한되는 동안 시민들에게 가드닝 키트를 제공하고, 정원 활동을 통해 일상을 이어가도록 도왔다. 씨앗을 뿌리고, 매일 물을 주고, 새 잎이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내 삶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감각을 회복시키는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정원에서 느낀 것은 기분 전환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과 연결된 안정감, 내가 살아 있다는 체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었다.

    서울 성동구의 옥상 치유정원 프로젝트 또한 같은 흐름에 있다. 독거 어르신들은 이 정원에서 토양을 만지고 씨앗을 나누며 규칙적인 일상을 회복했다. 정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곧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회적 공간이 되었고, 고독하게 흩어져 있던 삶들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뉴욕 브루클린의 힐링 가든은 코로나 희생자를 추모하는 정원으로 조성되었다. 그곳은 단순히 꽃이 피는 곳이 아니라 슬픔을 함께 다루는 공동체적 애도의 공간이었다. 개인의 상실을 공동체의 기억 속에 품음으로써, 정원은 트라우마를 견디게 하는 힘을 제공했다.

    정원은 이렇게 상처 난 시간을 부드럽게 껴안는 공간,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되었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전쟁·재난 트라우마

    고통을 다루는 또 다른 언어, 정원

    전쟁과 재난은 단순히 몸을 다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기반을 흔드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겪는다. 그런데 정원은 이 무너진 시간을 다시 서서히 복원시킨다.

    베트남의 힐링 가든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전용사들은 처음에는 정원 활동을 가벼운 체험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성장하는 식물을 지켜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들은 차츰 삶에 다시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원은 트라우마를 강제로 잊게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안전하게 붙들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피난민 정원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정원은 다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씨앗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경작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 나간다. 자연을 돌보는 행위가 곧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가 되며, 정원은 생존 이후의 삶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후쿠시마의 복구 텃밭은 더욱 상징적이다. 오염된 땅을 다시 살리는 과정은 단순한 환경 복원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었다. 땅을 되살리며 자신들의 삶과 존엄을 함께 되살린 것이다. 정원은 여기서 생태적 회복과 심리적 회복, 그리고 사회적 회복이 한곳에서 만나는 장이 되었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도시 고독과 우울

    정원은 사람을 다시 사람 곁으로 데려온다

    도시는 편리하지만, 그만큼 인간을 고립시킨다. 1인 가구, 고독사, 단절된 이웃 관계는 현대 도시사회의 가장 큰 상처다. 그러나 도시 속 정원은 이 단절을 다시 잇는 사회적 다리 역할을 한다.

    서울 망원동 마을정원에서는 이웃들이 함께 정원을 가꾸며 자연스러운 만남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흙을 만지며 대화가 시작된다. “올해는 상추가 잘 자라네요”, “다음 주엔 같이 모종을 옮겨볼까요?” 같은 소소한 말들이 쌓이며 낯섦은 친밀함으로 전환된다. 정원은 이렇게 관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연결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부산 영도의 마을정원은 버려졌던 산업 공간을 재생하여 세대가 함께 만나는 장소로 변모했다. 아이들은 흙에서 뛰놀고, 어른들은 가꾸고, 노년층은 경험을 나눈다. 정원은 세대를 나누지 않고, 경제적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초대하는 공간이 된다.

    뉴욕 브롱크스의 공동 정원에서는 흑인 커뮤니티가 함께 음식을 재배하고 나누며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했다. 방콕의 슬럼 힐링 가든에서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며 건강을 회복했고, 엄마들은 서로의 고된 삶을 위로하며 다시 웃음을 찾았다.

    정원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람들 스스로 체감하게 만든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정신질환·치매 관리

    정원은 뇌와 마음을 동시에 치유한다

    정원은 감정적 위로를 넘어 뇌 과학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오감이 자극되는 정원 환경은 뇌의 신경 활동을 안정시키고, 기억을 환기하며, 감정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네덜란드의 감각정원 프로그램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이 향기, 촉감, 빛과 그림자,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심리 안정 효과를 경험했다. 스웨덴 치매정원에서는 환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설계된 동선과 자연적 자극 요소를 통해 방향 감각을 유지하고 기억을 자극받는다. 이는 돌봄 부담을 줄이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호주의 PTSD 팜 프로그램에서는 정원과 동물이 결합된 환경이 더욱 깊은 치유 효과를 만들어 냈다. 자연을 돌보고 생명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참가자들은 다시 살아 있는 인간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부산의 청소년 치유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정원은 청소년들에게 평가받지 않는 공간,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있는 그대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정원은 약이 채워주지 못하는 공백을 채운다.

    정원은 인간적인 치유, 존엄이 담긴 치유를 제공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재난 이후의 경제·사회 회복

    정원은 마음뿐 아니라 삶 자체를 복구한다

    많은 사람은 정원을 취미 공간으로만 생각하지만, 정원은 재난 이후 사회와 경제 회복에도 실제로 기여한다.

    네팔 포카라의 지진 가든에서는 재난 이후 삶의 기반을 잃은 주민들이 다시 스스로의 손으로 먹거리를 재배하며 자립의 기반을 회복했다. 정원은 단지 심리 위로가 아니라 실제 생존 능력을 복구시키는 공간이 된 것이다.

    호주 산불 이후 조성된 힐링 가든은 상실을 경험한 시민들에게 또 다른 시작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잿더미가 아닌 다시 자라는 자연과 함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경주 지진 이후 운용된 치유 텃밭 프로그램 역시 비슷한 역할을 했다. 정원에서의 활동은 지역 경제를 움직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시 밖으로 나오게 했다. 정원은 재난이 가져온 멈춤움직임으로 바꾸는 힘을 가진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글로벌 네트워크

    정원은 치유 문화를 확산시키는 세계적 플랫폼이 되고 있다

    오늘날 힐링 가든은 나라별 실험을 넘어 하나의 국제적 흐름이 되고 있다. 각국의 치유정원 프로젝트는 서로 연결되고, 경험을 공유하고, 치유의 문화를 확장한다.

    분쟁 지역에서는 정원이 중립과 평화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같은 땅에 씨앗을 심으며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해 정원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적 공간이 되었다.

    한국의 순천만 국가정원 또한 이 글로벌 맥락 속에 있다. 정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과 만나는 치유의 인프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정원 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맺음말: 정원은 검증된 사회 치유 인프라다

    정원은 감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정원은 데이터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검증된 치유 시스템이다. 정원은 마음을 치유하고,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며, 재난 이후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무엇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공동체를 강화한다.

    우리는 이제 정원을 꾸미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를 치유하는 공공 인프라로 보아야 한다. 정책과 제도, 도시계획, 복지 시스템 속에서 정원이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거창한 정원만이 해답은 아니다. 집 앞 화분 하나, 동네 텃밭 한 구획, 아이들과 함께 심은 씨앗 하나로도 시작할 수 있다.

    정원이 사회 치유의 표준이 되는 날, 우리는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 서로를 돌보는 사회로 한 걸음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