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정원 사회학은 단순히 정원을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정원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는 장소라기보다, 자연이 인간의 사회 구조와 행동을 다시 짜는 역동적 관계의 현장이다.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처럼, 정원에서는 인간과 식물, 흙, 곤충, 물, 미생물이 서로 영향을 주며 작동하는 평등한 공동 생산자로 얽혀 있다. 정원은 인간이 만든 인공 경관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재형성하고 사회 질서를 재해석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기존의 정원 담론이 역사·치유·미학 중심이었다면, 정원 사회학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정원이 계급 재생산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젠더 역할을 강화하거나 해체하기도 하며, 글로벌 불평등과 식민지 유산을 드러내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시에 정원은 그 불평등을 완화하고, 새로운 공동체와 다른 사회적 질서를 실험하는 대안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정원을 하나의 사회적 장(field)으로 보고, 노동·소비·글로벌화·젠더·지속가능성이라는 다섯 개의 렌즈로 정원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정원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어떻게 실천하고 확장하는지 살펴본다.

정원의 노동 사회학: 가꾸기의 계급화와 재분배
정원은 언제나 노동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 노동은 동일하지 않았고, 늘 같은 방식으로 평가되지 않았다. 누가 정원을 가꾸느냐, 그 노동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사회적 위계가 드러나고 계급 구조가 재생산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코티지 가든’은 하층민 노동자들의 생존 공간이었다. 작은 땅에서 채소를 키우며 가족의 식량을 확보해야 했고, 이 노동은 생존을 위한 매우 실질적인 노동이었다. 반대로 귀족의 ‘그랜드 에스테이트 가든’은 수십, 수백 명의 정원사 노동 위에 만들어진 화려한 장식이었다. 같은 “정원 가꾸기”지만, 한쪽은 생존 노동, 다른 한쪽은 과시와 권력의 상징 노동이었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교외의 HOA 지역에서 잔디를 깎고 정원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일은 “책임 있는 시민”의 의무로 규정된다. 하지만 이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은 종종 이민 노동자이거나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잔디밭 뒤에는 계급과 인종이 교차하는 노동 구조가 자리한다.
그러나 정원은 단순히 불평등을 드러내는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동시에 노동 재분배의 실험장이 되기도 한다. 인도 SEWA(자영노동자협회)의 도시 주변 텃밭 프로젝트는 200만 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를 조직해 정원 가꾸기를 소득 활동으로 전환했다. 매일 일정 시간 정원 노동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제적 주체성을 회복하고, 가족과 공동체 내 지위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MST(토지 없는 농민운동) 커뮤니티 가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불법 점거지에서 시작된 텃밭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식량 자급과 판매 수익을 통해 지역 공동체 경제를 지탱하는 공간으로 성장했고, 정부 지원까지 이어졌다. 정원은 이렇게 하층민이 자연을 통해 다시 주체가 되는 사회 실험실이 된다.
소비와 상징자본: 정원이 생산하는 사회적 지위
정원은 노동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소비의 공간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자본 개념으로 본다면, 정원은 단순한 취미 공간이 아니라 취향, 계급, 문화적 자본을 생산하는 무대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라벤더 농장은 자연 풍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을 찾는 중산층 관광객은 단순히 꽃을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가까운 삶’, ‘유기농적 감수성’을 소비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자본으로 축적한다. 정원은 이렇게 자연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지위의 언어가 된다.
중국 상하이의 베란다 가든 열풍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도시 엘리트 계층은 고급 화분과 희귀 식물을 구매하며 “환경 의식 있는 세련된 시민”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한다. 정원은 자연을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이자, 사회적 위치를 은근히 드러내는 미묘한 계급의 언어다.
하지만 정원의 소비가 항상 상층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 지역 빅토리아 가든에서는 폐자재로 만든 화단이 삶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흙 한 줌, 식물 몇 포기가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공동체 기반의 식량 안전망을 형성한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자포티스테 공동체 가든 역시 토착민이 재배한 허브와 작물을 공정무역 시장과 연결하며, 정원을 생존자본과 정치적 자립의 수단으로 바꾼다.
정원은 이렇게 부유층에게는 상징 자본의 장이 되고, 빈곤층에게는 생존 자본의 장이 되며, 두 층위를 동시에 잇는 새로운 경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글로벌화와 식민지 유산: 정원에 남은 제국의 그림자
정원은 지역적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늘 글로벌한 역사와 연결된 공간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많은 식물과 경관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무역의 산물이다.
19세기 영국의 ‘워디언 상자(Wardian Case)’는 식민지에서 들여온 열대 식물을 유럽으로 운반하고 키울 수 있게 한 혁신적 장치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원예의 발전이 아니라, 식물까지 제국의 자원으로 전유하려는 권력 체계의 상징이었다. 네덜란드의 대표 정원 쿼겐호프의 화려한 튤립 역시, 그 뒤에는 식민지 교역과 세계 식물 이동의 역사라는 그림자가 함께 있다.
오늘날에도 글로벌 경제는 정원을 통해 드러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원과 식물 산업에는 멕시코 이민 노동자의 노동이 깊게 스며 있다. 농산물과 정원용 식물, 나무, 과일은 글로벌 공급망과 맞닿아 있으며,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가 자리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원은 그 역사를 비판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페루 아마존 지역의 협동조합 가든은 원주민이 카카오와 식물을 재배해 공정무역으로 연결하고, 식민 유산에 대한 경제적·문화적 복원을 시도한다. 정원은 제국주의의 흔적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유산을 반성하고 전환하는 저항과 재구성의 공간이 된다.
젠더와 정원: 돌봄 노동의 재평가
정원은 젠더 역할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1950년대 미국 교외에서 정원은 주부의 관리 영역으로 규정되었고, 이는 여성에게 돌봄과 가사 노동의 연장을 강요하는 도구가 되었다.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여성 노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원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스웨덴의 여성 농부 협동조합 유르트 유르브루크 (Jord Jordbruk)은 정원과 농업이 여성의 경제 독립, 리더십,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의 만 데시(Mann Deshi) 텃밭 프로젝트에서는 수많은 농촌 여성이 자신의 텃밭을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이는 가정폭력 감소와 삶의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중년 여성들이 정원 활동을 통해 재취업과 새로운 삶의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정원은 더 이상 “가사 노동의 연장”만이 아니라, 여성 돌봄 노동을 사회적·경제적 자본으로 전환하는 젠더 혁신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공존: 생태 사회학으로 본 정원
정원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실험하는 공간이다. 독일의 퍼마컬처 정원은 화학 비료 없이도 식량과 생태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호주의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화재 관리 정원은 전통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재해를 줄인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수박(Subak) 시스템은 물을 공유하고, 공동 규칙을 지키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온 1,000년의 실천 사례다. 한국 제주와 여러 지역 생태 정원 프로젝트 역시 지역 생태와 관광, 경제를 결합하여 자연과 공존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정원은 라투르가 말한 것처럼, 자연을 수동적 객체로 보지 않고, 벌·미생물·토양·물까지 함께 작동하는 “행위자 네트워크”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정원은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공존 사회의 축소판이 담겨 있다.
디지털 공존: 가상 정원의 확장된 사회학
오늘날 정원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디지털로 확장되고 있다. 온라인 가상 정원 플랫폼, 메타버스 정원, 원격 정원 교육 등은 정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로볼록스나 다양한 가상 정원 프로그램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가상의 흙을 가꾸고, 협력하고, 대화를 나눈다.
한국의 디지털 정원 프로젝트처럼, 노인과 청년, 도시와 농촌을 잇는 하이브리드 공존 정원은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학습 구조를 만들어 낸다. 정원은 점점 “모여서 흙을 만지는 공간”을 넘어, 연결되고 공유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맺음말: 정원, 공존의 사회학적 모델
정원 사회학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이 아닌 평등한 파트너로 본다. 노동의 재분배, 소비와 지위의 상징, 글로벌 불평등과 식민 유산, 젠더 전환, 지속가능성과 생태 공존까지—정원은 사회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이자, 그 구조를 다시 짤 수 있는 실험의 공간이다.
SEWA 여성의 흙 묻은 손, 발리 수박(Bali Subak)의 물길, 도시의 작은 텃밭 한 평 속에서도 우리는 공존의 미래를 본다. 정원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자연을 다스릴 것인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정원은 이미 그 답을 작은 씨앗으로 심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그 씨앗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이다.
'정원 사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원 사회: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관계와 공동체의 이야기 (0) | 2026.01.02 |
|---|---|
| 정원 사회학으로 본 도시 정원 운동과 사회적 연대의 문화 (0) | 2026.01.01 |
|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정원을 통한 사회 치유: 마음의 생태학 (0) | 2025.12.30 |
|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의 민주화: 모두의 공간으로 변화하는 문화 (0) | 2025.12.30 |
|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한국의 정원문화 (0) | 202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