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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공동체는 왜 사라졌고, 왜 다시 정원이 호출되는가
현대 도시에서 공동체의 해체는 낯선 현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밀집된 공간에 살지만 서로를 알지 못하고, 같은 건물에 살아도 이름을 모른 채 지낸다. 이러한 단절은 개인의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 도시 구조 자체가 관계를 만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거, 노동, 여가가 분리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목적을 가지고 이동할 뿐, 머무르며 관계를 형성할 여지를 거의 갖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정원은 반복적으로 호출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단순히 자연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가 잃어버린 관계의 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정원이 자동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공할 뿐이며, 그 조건이 어떻게 설계되고 운영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공동체를 만든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이 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공동 사용이다. 단순히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유럽과 북미에서 확산된 커뮤니티 가든 사례를 보면 이 차이가 분명해진다.
미국 뉴욕의 커뮤니티 가든은 주민들이 함께 토양을 고르고, 식물을 심고, 수확을 나누는 구조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정원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책임져야 할 공간이 된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식물이 시들고, 관리하지 않으면 공간이 빠르게 황폐해진다. 즉 정원은 참여를 요구하는 공간이며, 이 참여가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공동체는 ‘친해지자’는 의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구조가 사람들을 엮는다. 공동체는 감정이 아니라 실천의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느린 시간과 반복이 관계를 만든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이 공동체 형성에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의 리듬 때문이다. 도시의 대부분의 공간은 빠른 이동과 짧은 체류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반면 정원은 기다림과 반복을 요구한다. 씨를 뿌리고,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독일의 시민정원(Kleingarten) 사례를 보면, 정원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수년, 수십 년 이어지는 관계의 매개체다. 이 정원들은 개인이 구획을 사용하지만, 전체 규칙은 공동체가 공유한다. 계절마다 반복되는 작업과 행사 속에서 이웃은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공동체는 특별한 이벤트보다, 이런 반복적 만남 속에서 형성된다. 정원은 이 반복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역할이 생길 때 공동체는 유지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방만으로는 부족하다. 공동체는 역할이 분화될 때 지속된다. 물을 관리하는 사람, 도구를 정리하는 사람, 신규 참여자를 안내하는 사람 등 각자의 역할이 생길 때, 정원은 개인의 취미 공간을 넘어 공동체의 장이 된다.
일본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정원 사례에서는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소규모 정원에서는 반드시 운영 담당자, 기록 담당자, 행사 담당자 등이 존재한다. 이 역할은 위계라기보다 책임의 분산에 가깝다.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그 공간에 대한 소속감과 발언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단순히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관여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공동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형성된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공동체의 질을 결정한다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식물 선택, 관리 방식, 이용 규칙을 두고 의견 충돌은 반드시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그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정원 사회학에서 본 정원 공동체는 갈등을 외면하기 어렵다. 같은 공간을 계속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타협, 조정, 대화를 배우게 된다. 이는 추상적인 시민 교육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사회적 학습이다.
영국의 일부 커뮤니티 가든에서는 갈등 조정 회의가 정기적으로 열리며, 이는 정원의 중요한 운영 과정으로 인식된다. 정원 사회학에서 본 정원은 공동체가 이상적으로만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관계를 유지하는 연습장이 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한국의 정원이 공동체가 되기 어려운 이유
한국에서도 마을정원, 생활정원 정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많은 경우 공동체 형성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원이 여전히 관리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정원은 ‘잘 유지되어야 하는 공간’이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잔디 출입 금지, 식물 훼손 우려, 민원 회피를 우선하는 운영 방식은 시민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이 경우 정원은 아름답지만,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동체는 통제 속에서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일부 주민참여형 정원에서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함께 심는 날, 함께 돌보는 일정, 작은 수확 행사는 정원을 매개로 한 관계의 씨앗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참여가 허용되는 구조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공동체를 ‘만들지’ 않는다, 가능하게 할 뿐이다
정원이 공동체를 만든다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정원을 만능 해결책처럼 상상한다. 하지만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공동체를 자동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정원은 다만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 즉 함께 머무를 공간, 반복될 시간, 역할과 책임, 갈등을 다룰 장을 제공할 뿐이다.
공동체는 여전히 사람들의 선택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정원은 그 선택을 훨씬 쉽게 만들고, 실천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도시에서 공동체가 사라진 이유가 구조의 문제였다면, 정원은 그 구조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는 장치다.
결국 정원이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이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는, 우리가 어떤 도시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정원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답변의 장소다.
보너스
미국 커뮤니티 정원 ‘크리스티 가든(Christie Garden)’ 사례
버려진 도시의 틈에서 시작된 정원
크리스티 가든은 처음부터 ‘정원’으로 계획된 공간이 아니었다. 이 정원이 자리한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는 1970년대 심각한 도시 쇠퇴를 겪었다. 건물은 방치되거나 화재로 무너졌고, 빈 대지는 쓰레기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시 정부조차 관리하지 못하던 이 공간은 도시의 실패가 드러난 장소였다.
크리스티 가든 역시 그런 방치된 공공 부지 중 하나였다. 이 공간을 정원으로 바꾼 주체는 행정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고, 토양을 고르고, 울타리를 세웠다. 이때 정원은 미적 목적의 공간이 아니라, “더 이상 이 동네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크리스티 가든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아니라, 주민 생존의 공간적 전략에서 출발했다.
소유하지 않지만 책임지는 공간
크리스티 가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유 구조와 운영 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이 땅은 시 소유였고, 주민들은 소유권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정원의 관리와 운영, 규칙 설정은 전적으로 주민들의 몫이었다.
정원에는 명확한 규칙이 존재했다. 개인이 독점할 수 없고, 반드시 공동 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정기적인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물 주기, 퇴비 관리, 행사 준비 등은 역할 분담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구조에서 정원은 단순한 ‘이용 공간’이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한 공동 자산이 된다.
정원 사회학적으로 보면, 크리스티 가든은 사유재도 공공재도 아닌 ‘공동관리 자원(common-pool resource)’에 가깝다. 소유는 공공에 있지만, 관리는 공동체가 맡는다. 이 긴장은 공동체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게 묶는 역할을 했다.
식물을 매개로 형성된 다층적 공동체
크리스티 가든의 공동체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었다. 이 지역에는 이민자, 저소득층, 예술가, 노년층이 혼재해 있었다. 언어도, 문화도, 생활 리듬도 달랐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엮일 수 있었던 이유는 식물이라는 공통의 매개 덕분이었다.
정원에서는 정치적 입장이나 직업, 출신보다 “누가 물을 주는가”, “누가 잡초를 뽑는가”가 더 중요했다. 식물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면 결과가 드러난다. 이 구조 속에서 정원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공간이 되었고, 이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는 강력한 장치로 작동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대화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침묵의 시간을 제공했다. 이 시간은 도시에서 보기 드문 관계 형성의 방식이었다.
갈등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공동체가 유지되었다
크리스티 가든에도 갈등은 존재했다. 어떤 식물을 심을 것인가, 행사를 얼마나 자주 열 것인가, 외부 방문객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정원에서는 갈등을 피하기보다 정원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정기적인 회의가 열렸고, 결정은 합의 또는 다수결로 이루어졌다. 중요한 점은, 갈등이 생기면 정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을 계속 써야 했다는 사실이다. 이 조건은 대화를 강제하지 않지만, 회피를 어렵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정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도시 시민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연습하는 장이 된다. 크리스티 가든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매우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과의 긴장
크리스티 가든이 위치한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이후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다. 정원이 조성되며 지역 환경이 개선되자, 부동산 가치가 상승했고, 기존 주민들은 밀려날 위험에 처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티 가든은 아이러니한 위치에 놓인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만든 정원이, 오히려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커뮤니티 가든이 철거 위기에 놓였고, 실제로 사라진 정원도 많았다.
크리스티 가든은 지역 사회와 시민단체의 연대로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지만, 이 사례는 정원이 공동체를 만들 수는 있어도, 도시 구조 전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크리스티 가든이 남긴 사회적 의미
크리스티 가든은 화려한 디자인이나 대규모 정책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작고 불안정하며,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정원이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정원에서 공동체는 캠페인이나 교육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반복 속에서 형성되었다. 소유하지 않지만 책임지는 구조,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운영, 참여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시스템은 공동체의 본질을 드러낸다.
크리스티 가든은 말한다. 공동체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해야만 유지되는 공간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한국 도시 정원에 주는 시사점
한국에서 커뮤니티 정원을 논할 때, 우리는 종종 프로그램과 예산, 디자인을 먼저 이야기한다. 하지만 크리스티 가든 사례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 이 정원은 누가 책임지는가
- 참여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갈등을 논의할 구조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정원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공동체가 되기 어렵다. 크리스티 가든은 정원이 공동체를 ‘만들어준다’기보다,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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