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언제부터 ‘자연’이 아니라 ‘개념’이 되었을까
정원은 오랫동안 자연을 가까이 두기 위한 공간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정원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 변화는 정원의 형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정원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역할, 그리고 정원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 자체를 재구성했다.
근대 이전의 정원이 권력과 신분, 종교적 세계관을 공간으로 구현한 장치였다면, 근대 이후의 정원은 산업화·도시화·민주주의·환경 위기라는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정의된다. “근대 이후 정원 개념은 어떻게 바뀌었나”라는 질문은 결국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정원 사회학이 읽어내는 근대 초입의 변화: 통제되던 자연에서 경험되는 자연으로
근대 초기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자연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다. 프랑스의 베르사유식 정원은 자연을 완벽히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절대왕정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직선, 대칭, 축선으로 구성된 이 정원은 자연이 인간의 이성에 복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영국에서 등장한 풍경식 정원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연은 더 이상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경험하고 감상해야 할 풍경이 된다. 인공을 숨기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영국식 정원은 근대적 개인의 감수성과 감정의 중요성을 반영했다. 이 시점부터 정원은 권력의 상징에서 개인의 감정과 취향이 반영되는 공간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정원 사회학이 읽어내는 산업혁명 이후: 정원은 귀족의 소유에서 시민의 권리로
산업혁명은 정원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든 계기였다. 도시가 급속히 팽창하고 노동자 계층이 밀집 주거지에 몰리면서, 자연은 일상에서 사라졌다. 이때 정원은 더 이상 소수의 소유물이 아니라, 도시 시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한 공공 자원으로 재정의된다.
영국의 공공공원 운동, 미국의 센트럴 파크는 이러한 전환의 대표적 사례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완화하는 도시 장치가 된다. 위생, 건강, 도덕성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정원은 공공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시민은 정원을 소유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정원은 미적 공간에서 사회적 인프라로 변모한다.
정원 사회학이 읽어내는 20세기 초반: 기능주의 도시와 정원의 긴장
20세기 초반 근대 도시계획은 효율과 기능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주거, 노동, 여가를 분리하는 기능주의 도시에서 정원은 종종 주변부로 밀려났다. 이 시기 정원은 필수 요소라기보다, 도시의 여유가 허락될 때 추가되는 장식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정원은 기능주의 도시가 놓친 인간적 요소를 보완하는 공간으로 재등장한다. 공원과 녹지는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도시인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회복하는 장소로 주목받는다. 정원은 효율 중심 도시의 균열을 메우는 완충지대로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정원 사회학이 읽어내는 전후 시대: 정원은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원 개념은 또 한 번의 전환을 맞는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정원은 공동체 회복의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독일의 시민정원(Kleingarten)은 이 시기의 대표적 사례다. 정원은 개인의 취미가 아니라, 사회적 안정과 복지를 지탱하는 제도적 공간이 된다.
미국에서는 커뮤니티 가든이 등장하며, 정원은 시민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 시기 정원은 관리되는 공간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공간으로 이해된다. 정원은 자연을 다루는 장소이자, 시민성을 훈련하는 사회적 무대가 된다.
정원 사회학이 읽어내는 후기 근대: 환경 위기 속에서 다시 호출된 정원
20세기 후반 이후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정원은 다시 한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정원은 과거처럼 자연을 대체하거나 장식하는 공간이 아니다. 정원은 인간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는 실천의 장으로 재정의된다.
생태정원, 빗물정원, 도시 텃밭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시도의 결과다. 이 정원들은 완벽하게 관리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실험한다. 정원은 더 이상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공간이 된다.
정원 사회학이 읽어내는 현대 도시에서의 정원: 소유에서 관계로
현대에 들어 정원 개념의 핵심 변화는 ‘소유’에서 ‘관계’로의 이동이다. 정원은 누가 가졌는가 보다, 누가 어떻게 관계 맺는가가 중요해졌다. 사유 정원, 공공정원, 민간정원의 구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원의 사회적 가치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형성된다.
일본의 마치즈쿠리형 정원은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정원은 개인 소유일 수 있지만, 지역 경관과 공동체의 일부로 관리된다. 싱가포르의 공공정원은 국가가 설계한 공공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커뮤니티 가든은 시민 참여를 통해 정원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이처럼 근대 이후 정원은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관계적 공간이 된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 개념 변화의 핵심은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근대 이후 정원 개념의 변화는 결국 인간관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인간을 통제해야 할 존재로 보느냐, 참여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느냐, 자연과 분리된 존재로 보느냐, 공존하는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정원의 모습은 달라졌다.
정원은 이 변화가 가장 부드럽게, 그러나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정원을 보면 그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시민을 어떻게 상상하는지, 공동체를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려 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근대 이후 정원은 끝없이 질문하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정원은 더 이상 정해진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자연을 얼마나 통제해야 하는가, 얼마나 맡겨야 하는가. 시민은 이용자인가, 참여자인가. 정원은 장식인가, 인프라인가.
“근대 이후 정원 개념은 어떻게 바뀌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원이 더 이상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정원은 사회가 스스로를 성찰하는 공간이 되었고, 그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다. 정원은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보너스
센트럴파크(Central Park)에 대하여
― 근대 도시가 만든 가장 거대한 ‘사회적 정원’
왜 뉴욕 한가운데에 거대한 공원이 필요했을까
19세기 중반의 뉴욕은 급격한 산업화와 이민자 유입으로 극심한 도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주거 환경은 열악했으며, 노동자 계층은 햇빛과 녹지에서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도시 엘리트와 개혁가들은 이러한 환경이 범죄, 질병, 사회 불안을 낳는다고 보았다.
센트럴파크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했다. 이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도시를 ‘교정’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 자연을 도시 한복판에 들여옴으로써 시민의 도덕성, 건강, 사회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근대적 신념이 그 출발점이었다.
옴스테드와 보가트: 공원은 설계된 사회였다
센트럴파크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캘버트 복스(Calvert Vaux)가 설계한 ‘그린즈워드 플랜(Greensward Plan)’에 따라 조성되었다. 이 설계의 핵심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과 관계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공원 안에는 의도적으로 굽이치는 산책로, 시야가 트인 초지, 숲길이 배치되었다. 이는 시민이 자연스럽게 걷고, 머물고, 서로를 관찰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다. 특히 마차 도로, 보행로, 승마로를 분리한 설계는 계층 간 충돌을 최소화하면서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만드는 절묘한 타협이었다. 센트럴파크는 자연을 닮은 풍경을 빌려 사회적 질서를 연출한 공간이었다.
‘모두의 공원’이었지만 모두에게 평등하지는 않았다
센트럴파크는 미국 최초의 대규모 공공공원 중 하나였지만, 그 공공성은 결코 완전하지 않았다. 공원 조성을 위해 기존에 거주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이민자 공동체(세네카 빌리지)는 강제 철거되었다. 즉 센트럴파크는 사회 개혁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배제와 희생 위에 세워진 공간이기도 했다.
또한 초기에는 특정 행동이 금지되었고, 공원 이용 방식에는 암묵적인 규범이 존재했다. 노동자 계층의 소란스러운 활동보다는, 중산층의 ‘품위 있는 산책’이 이상적인 이용 방식으로 상정되었다. 이는 센트럴파크가 시민을 평등하게 대하기보다는,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려 했던 공간임을 보여준다.
센트럴파크의 공간 구성과 상징성
센트럴파크는 하나의 통합된 공원이지만, 내부에는 매우 다양한 성격의 공간이 공존한다. 베데스다 테라스와 분수는 공원의 상징적 중심으로, 사람들의 만남과 시선이 집중되는 장소다. 더 몰(Mall)은 직선 산책로로, 사회적 관람과 과시가 이루어지는 무대였다. 반면 더 램블(The Ramble)은 미로 같은 숲길로, 사적인 사색과 비공식적 만남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처럼 센트럴파크는 하나의 공원 안에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질서와 자유를 동시에 배치했다. 이는 근대 도시가 요구한 복합적인 사회적 기능을 반영한 결과다.
민주주의의 무대가 된 공원
20세기에 들어 센트럴파크의 성격은 크게 변화한다. 공원은 더 이상 시민을 ‘교화’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장소가 된다. 집회, 시위, 대규모 콘서트, 문화 행사가 열리면서 센트럴파크는 정치적·문화적 공공 영역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공원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장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는 조용한 휴식 공간이면서 동시에, 필요할 때는 수십만 명이 모여 사회적 요구를 외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이 이중성은 공공 정원이 가진 가장 근대적인 특징 중 하나다.
쇠퇴와 회복: 시민 참여의 실험
1970년대 뉴욕의 재정 위기 속에서 센트럴파크는 심각하게 쇠퇴했다. 관리 부족, 범죄 증가, 시설 노후화로 공원은 도시의 자랑이 아니라 문제 공간이 되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센트럴파크 컨서번시(Central Park Conservancy)**다.
이 조직은 민관 협력 방식으로 공원을 관리하며, 시민 기부와 자원봉사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는 센트럴파크가 다시 한 번 정원의 개념을 확장한 사례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국가만의 책임도, 개인의 소유도 아닌 공동 관리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센트럴파크의 한계와 오늘의 질문
센트럴파크는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진다. 공원이 주변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리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촉진했다는 비판, 관리 주체의 민영화가 공공성을 약화시킨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즉 센트럴파크는 성공적인 공공정원이면서 동시에, 공공성과 불평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트럴파크는 분명히 보여준다. 정원 사회학에서 정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사회적 실험의 장이며, 도시가 스스로를 조정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센트럴파크가 남긴 의미
센트럴파크는 “도시에도 자연이 필요하다”는 주장 이상의 것을 증명했다. 이 공원은 정원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 시민성, 민주주의, 권력 관계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근대 이후 정원 개념의 변화는 센트럴파크 안에 압축되어 있다. 권력의 정원에서 시민의 정원으로, 관리의 공간에서 참여의 공간으로, 미학의 대상에서 사회적 인프라로. 센트럴파크는 여전히 묻고 있다.
공공 정원은 누구를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공간에 얼마나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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