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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뉴욕의 공원인데, 왜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
센트럴파크와 하이라인은 모두 뉴욕을 대표하는 공공정원이다. 두 공간 모두 도시 한복판에 위치하며,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고, ‘성공한 공공공원’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 둘을 같은 범주로 묶는 순간, 중요한 차이가 지워진다.
센트럴파크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공공정원을 왜 필요로 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하이라인은 뉴욕이 공공정원을 어떻게 활용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규모나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에 대한 시대적 인식,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자본과 시민의 관계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센트럴파크는 결핍을 보완하기 위한 공공정원
센트럴파크가 조성된 19세기 중반, 뉴욕은 산업화로 인한 심각한 도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밀집 주거, 열악한 위생, 범죄와 질병은 도시 전체의 불안 요소였다. 센트럴파크는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교정적 공공 인프라였다.
이 공원은 “모두에게 자연을 제공해야 한다”는 근대적 공공성 개념에 기반한다. 자연은 사치가 아니라 건강과 도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고, 국가는 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여겨졌다. 센트럴파크는 도시가 시민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였다.
즉 센트럴파크는 도시의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이 공원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도시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했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하이라인은 잉여를 재배치하는 공공정원
반면 하이라인은 전혀 다른 조건에서 탄생했다. 하이라인이 조성된 21세기 초의 뉴욕은 이미 세계적인 글로벌 도시였고, 공원과 녹지가 전혀 없는 도시도 아니었다. 하이라인은 도시의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잉여 자산을 재활용한 프로젝트였다.
버려진 고가 철도라는 불필요한 인프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하이라인은, 도시 재생과 브랜드 전략, 관광 산업과 결합되며 상징적인 정원이 되었다. 이 정원은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도시의 이미지를 재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하이라인은 결핍을 메우는 정원이 아니라, 가치를 증폭시키는 정원이다. 이 점이 두 공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공공성 차이: 권리였던 공원과 선택지가 된 공원
센트럴파크에서 공공성은 ‘권리’에 가까웠다. 공원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환경 조건이었다. 물론 실제 이용에는 계층적 규범과 배제가 존재했지만, 최소한 공원의 존재 이유는 시민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하이라인의 공공성은 다르게 작동한다. 하이라인은 누구나 입장할 수 있지만, 이 공원은 특정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를 전제로 한다. 걷고, 사진을 찍고, 전시와 공연을 감상하는 방식은 이미 중산층 이상의 도시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더 친화적이다.
즉 센트럴파크의 공공성은 보편적 접근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하이라인의 공공성은 열려 있지만 선택적인 공공성에 가깝다. 이 차이는 이용자의 구성과 공간의 분위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본 공간 구조가 만든 차이: 면(面)의 공원과 선(線)의 공원
센트럴파크는 ‘면’의 공원이다. 넓고 깊은 공간은 도시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부에서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이 공원 안에서는 도시가 잠시 사라진다. 시민은 도시에서 벗어난 자연 속에 머문다.
하이라인은 ‘선’의 공원이다. 이 공원은 도시를 차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 위를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건물과 거리, 사람을 노출시킨다. 하이라인에서는 자연과 도시가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소비된다.
이 구조적 차이는 사회적 결과로 이어진다. 센트럴파크는 주변 도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만, 하이라인은 주변 지역 전체를 연결하며 부동산 가치와 도시 이미지를 연쇄적으로 변화시킨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자본과의 관계: 공공재와 자본 촉매의 차이
센트럴파크 역시 부동산 가치 상승에 기여했지만, 그 효과는 장기적이고 간접적이었다. 공원은 도시의 기본 인프라로 인식되었고, 자본은 그 위에 천천히 축적되었다.
하이라인은 자본과 훨씬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공원 조성 단계부터 개발 계획과 밀접하게 연동되었고, 고급 주거·상업 시설이 하이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하이라인은 공공정원이면서 동시에 도시 개발의 촉매 장치로 기능했다.
이 차이 때문에 하이라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 되었고, 센트럴파크는 상대적으로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시민 참여의 차이: 교화의 공간과 소비의 공간
센트럴파크는 시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상정했다. 시민은 공원에서 자연스럽게 걷고, 질서를 배우고, 중산층적 시민성을 익히는 존재로 설계되었다. 이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문제적이지만, 당시로서는 공공성을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하이라인은 시민을 교화하지 않는다. 대신 시민을 방문자, 관람자, 소비자로 위치시킨다. 하이라인에서는 시민이 공간을 바꾸기보다는, 공간을 경험하고 기록한다. 참여보다는 소비가 중심이 된다.
이 차이는 공원이 시민을 어떤 존재로 상정하는지에 대한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센트럴파크는 ‘필수였고’, 하이라인은 ‘선택이었다’
센트럴파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도시가 더 악화되었을 공간이다. 하이라인은 만들어지지 않아도 도시는 존재했을 공간이다. 이 사실은 두 공원의 모든 차이를 설명한다.
센트럴파크는 공공정원이 도시를 지탱하던 시대의 산물이고, 하이라인은 공공정원이 도시를 브랜딩 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전자는 사회적 안전망의 일부였고, 후자는 도시 경쟁 전략의 일부였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하이라인이 던지는 질문, 센트럴파크가 남긴 유산
하이라인은 센트럴파크의 진화형이 아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센트럴파크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도시는 시민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가?”
하이라인이 묻는 질문은 다르다.
“도시는 공공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질문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다. 하이라인은 분명히 혁신적인 정원이지만, 동시에 공공정원이 어떤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두 공원의 차이는, 우리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의 차이다
하이라인과 센트럴파크의 차이는 미학이나 설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시민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다.
공원을 권리로 볼 것인가, 자산으로 볼 것인가.
정원을 보호의 장치로 만들 것인가, 성장의 도구로 만들 것인가.
이 선택에 따라 같은 ‘정원’은 전혀 다른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
센트럴파크와 하이라인은 뉴욕이라는 같은 도시 안에서, 공공정원이 어디까지 변해왔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대비는 오늘날 정원을 계획하는 모든 도시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정원은 도시를 살리기 위한 공간인가, 도시를 팔기 위한 공간인가.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하이라인과 센트럴파크의 교훈을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이라인과 센트럴파크의 차이는 한국 도시 정원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두 공원의 가장 큰 차이는 형태나 디자인이 아니라, 정원을 바라보는 도시의 목적에 있었다. 센트럴파크는 시민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필수 공공 인프라였고, 하이라인은 도시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자산 가치를 증폭시키는 전략적 공간이었다. 이 차이는 한국에서 정원을 도입할 때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한국의 도시 정원 정책은 최근 하이라인형 모델에 빠르게 끌리고 있다. 유휴 부지, 폐선, 하천 상부를 정원으로 재생해 도시 브랜드를 높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원이 주민 보호 장치 없이 가치 상승의 촉매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원이 조성된 뒤 임대료 상승, 상업화, 기존 주민 이탈이 반복된다면, 이는 정원의 실패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실패다.
따라서 한국에 적용할 핵심 원칙은 분명하다. 첫째, 정원의 목적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생활권 정원은 센트럴파크형 공공 인프라로 접근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최소화하고, 도시 브랜드형 정원은 하이라인처럼 개발 효과를 인정하되 사회적 환원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둘째, 정원 조성과 동시에 주거·임대·상권 보호 정책을 결합해야 한다. 정원만 따로 놓고 공공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정원의 운영 단계에서 주민 참여와 장기 이용권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원이 지역의 ‘풍경’이 아니라 ‘생활 기반’으로 작동할 때 배제의 위험은 줄어든다.
결국 하이라인과 센트럴파크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정원을 도시를 살리는 도구로 쓸 것인가, 도시를 팔기 위한 자산으로 쓸 것인가.
이 선택을 명확히 하지 않는 한, 한국의 도시 정원은 반복적으로 같은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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