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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기후위기 시대의 정원,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
오늘날 “정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인류의 사회적·생태적 방향성을 묻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폭염, 가뭄, 미세먼지,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이 시대에 정원을 가꾸는 일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윤리적 응답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원 사회학은 바로 이런 전환의 순간에 주목한다.
정원 사회학이 바라보는 정원은 더 이상 개인의 미적 취향이나 위로의 도피처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망, 자본주의적 공간 생산, 환경적 책임, 그리고 공동체의 상상력이 교차하는 복합적 장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원 담론은 그 어느 때보다 ‘책임’의 개념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위로의 정원에서 책임의 정원으로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정원으로 돌아갔다. 도심의 옥상 텃밭, 공동주택의 작은 마당, 온라인 식물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많은 이에게 식물은 ‘위로’의 존재였다. 불확실한 시대에 푸른 생명은 심리적 안정을 주었다.
하지만 정원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위로 중심의 정원 담론에는 한계가 있다. ‘나를 위로해 주는 초록’이라는 감성은 환경 파괴의 구조적 문제를 가린다. 정원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자 잠재적 가해자다. 물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잔디정원, 비닐 화분과 수입 묘목에 의존한 소비적 원예는 탄소배출과 생태계 교란에 기여한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위로의 정원’이 아니라 ‘책임의 정원’이다. 정원을 짓는 행위가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보전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되어야 한다.
19세기 말 영국의 정원가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은 전통적인 형식미를 거부하고, 자연에 가까운 “와일드 가든(Wild Garden)”을 제안했다. 그는 식물을 인간의 지배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보았다.
오늘날 그의 사상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런던 교외의 여러 공공정원은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꽃과 풀의 자생력을 믿는 방향으로 관리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 흐름은 ‘조경의 미학’에서 ‘생태의 윤리’로 이동한 중요한 전환이다. 즉, 인간이 자연을 돕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방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책임의 첫걸음임을 보여준다.
서울시의 ‘서울로 도시정원사’ 프로그램과 자치구 단위의 ‘공동체정원’ 사업은 도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태적 실천의 대표적 사례다. 금천구 시흥동의 한 공동체정원에서는 주민들이 폐자재를 재활용해 화단을 만들고, 빗물을 모아 식물에 물을 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정원은 단지 동네를 꾸미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 주민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민적 실험실’이 된다.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이런 정원은 ‘생태적 시민성(ecological citizenship)’이 발현되는 구체적 장이다. 개인의 취미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이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는 것이다.
일본의 ‘사토야마(里山)’는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던 전통적 농촌 경관을 의미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도시근교의 유휴지를 복원하는 흐름이 확산 중이다. 학교나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 산림을 공동 관리하고, 생태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사토야마 프로젝트’는 자연을 생산과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던 산업사회적 패러다임을 넘어, 손상된 생태계의 공동 복원 과정으로서 정원의 사회적 책임을 되살린다. 정원은 ‘가꾸는 공간’이자 ‘되찾는 공간’이 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정원의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 정의
기후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도시 열섬 현상과 홍수 피해는 저소득 지역에 집중되고, 공원 접근성 또한 지역 간 불균형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정원 사회학은 ‘누가 정원에 접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울의 강북과 강남, 도쿄의 중심부와 변두리, 런던의 공공정원과 사설가든은 서로 다른 생태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녹지의 양’ 문제가 아니라, 생태적 정의(ecological justice)에 관한 문제다. 정원이 특정 계층의 위로로만 기능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결국, 진정한 ‘책임의 정원’은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곳에서 식물과 인간이 공존하듯, 사회의 다양한 주체가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원 사회학으로 보는 정원 디자인의 전환: ‘기후위기형 정원’의 원칙
‘책임의 정원’을 사회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디자인과 관리 원칙이 필요하다. 세계 곳곳의 사례는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첫번째 디자인은 토착·기후적응 식물 중심 정원 디자인이다.
정원 사회학이 강조하는 첫 원칙은 “이 장소의 기후와 역사를 기억하는 식물”을 고르는 것이다
영국 에식스 해안의 ‘Winds of Change’ 정원은 강풍·염분·가뭄에 견디는 해안 식물(바닷가 갈대, 세덤, 씨케일 등)을 중심으로 구성해, ‘지역 기후에 적응한 식물 팔레트’ 자체를 전시했다.
유럽 여러 기후적응 정원에서는 잔디 대신 깊은 뿌리를 가진 다년초·관목을 심어 탄소를 더 많이 저장하고, 가뭄·폭우에 모두 버티는 식생 구조를 만드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런 사례들은 “예쁜 외래종”이 아니라 장소성과 회복력을 기준으로 식물을 고르는 것이 기후위기형 정원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두번째 디자인은 물 민감형정원과 빗물 정원이다.
기후위기형 정원에서 정원 사회학이 특히 주목하는 영역이 물이다. 빗물의 흐름을 ‘버리는 것’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 바꾸는 공간 실험이 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의 공공녹지 사례 연구는, 고급 수돗물로 잔디를 가관수하는 관행을 비판하며 잔디 축소·저류지·멀칭·저유량 관개·재이용수 사용 등을 제안했다.
호주 멜버른은 도시 곳곳에 빗물정원과 생태저류지를 설치해, 도로에서 흘러온 빗물을 식재지에서 여과·저장한 뒤 천천히 스며들게 함으로써 홍수와 수질 문제를 동시에 줄이고 있다.
폴란드 루블린의 ‘빗물 잡기’ 프로젝트에서는, 반복적인 가뭄·집중호우에 대응하기 위해 비가 올 때 잠시 물에 잠겨도 견디는 토착 식물들을 활용한 빗물 정원을 조성했다.
이러한 물 민감형 정원은 단순한 배수 시설이 아니라, 도시민이 기후위기의 핵심 현상(폭우·가뭄)을 몸으로 배우는 공공 교실이 된다.
세번째 디자인은 포장 걷어내기와 토양·그늘 회복이다.
열돔과 폭우가 일상이 된 도시에서, 정원 사회학은 “얼마나 새로 깔았는가”보다 “얼마나 걷어냈는가”에 주목한다.
암스테르담 뉴웨스트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중정 전체를 다시 뜯어내고 잔디·관목·나무·빗물 저류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장을 제거한 자리에는 물이 스며드는 토양과 침투 공간을 만들고, 집중호우 때 물을 받아두었다가 천천히 배출하도록 설계했다.
동시에, 여름에는 나무 그늘과 증발산 효과가 미세기후를 시원하게 만드는 ‘생활형 기후 완충지대’ 역할을 하도록 했다.
멜버른·포틀랜드 등지의 녹색거리 사업에서도 인도·도로변 포장을 일부 뜯고 빗물정원·생울타리·가로수대를 조성해, 보행자가 체감하는 온도를 낮추고 폭우 시 도로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설계한다.
포장을 걷어낸 자리에 만들어진 정원은,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된다.
네번째 디자인은 역사·유산 정원의 기후 적응 리모델링이다.
기후위기형 정원은 새로 만드는 정원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원 사회학 관점에서 오래된 유산 정원을 ‘기후 적응형 학습장’으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중요하다.
독일 올덴부르크의 ‘Klimaoasen(기후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슐로스가르텐 같은 역사적 정원에서 연못 준설·식생 섬 설치·개천 복원·투수성 포장 도입을 통해 폭우와 가뭄을 동시에 대비하고 있다.
기후 스트레스로 약해진 노거수는 전수조사와 등록을 거쳐, 수종 전환·토양 개선·수분 관리 등을 결합한 ‘기후 적응형 재식재 계획’ 속에서 다루어진다.
이처럼 유산 정원을 “과거의 풍경”이 아니라 “기후 미래를 배우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정원과 기억·정체성을 연결하는 사회학적 실천이다.
다섯번째 디자인은 탄소·물·서식지를 동시에 갖춘 다기능 생태 정원이다.
정원 사회학이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것은 “한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환경 기능을 겹쳐 쌓을 수 있는가”이다.
일부 기후회복 정원 설계에서는 깊은 뿌리의 식물로 탄소를 저장하고, 빗물을 흡수·정화하는 빗물정원 구조를 도입하며, 동시에 꽃가루·열매를 제공해 곤충과 새의 서식처가 되도록 설계한다.
호주·유럽의 케이스들에서는 커뮤니티 정원·공원에 이런 다기능 식재를 도입해, 이용자들이 “여기서 쉬는 동안 이 정원이 어떤 환경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교육 프로그램과 안내판으로 연결한다.
이런 다기능 정원은, “예쁜가?”라는 질문을 “이 정원은 지금 무엇을 돕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게 만들며, 기후위기형 정원의 핵심 원칙을 일상 속에서 체화하도록 돕는다.
철학적 관점: 위로의 윤리에서 책임의 정치로
기후위기 시대의 정원 담론을 단순히 심리적 ‘힐링’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위로는 짧지만, 책임은 지속된다.
정원 사회학자들은 정원이 “자연을 사회적으로 번역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어떤 정원을 만들고, 어떤 식물을 선택하며,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바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를 보여준다.
‘책임의 정원’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환경과 공동체에 대한 태도, 자원의 분배 방식, 사회적 연대의 구조가 정원의 형태와 운영 속에 녹아 있다. 정원을 통해 ‘기후시민’으로서의 윤리를 학습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본 방향
한국의 도시들은 빠르게 녹지 회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형미 중심의 도시정원’이 주를 이룬다. 나무의 생태적 기능보다 정원의 시각적 효과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흐름이 바뀌고 있다. 부산의 ‘도시바람숲 프로젝트’, 전주의 ‘에코힐링가든’ 조성 시도, 강릉 경포습지 복원 등은 생태·사회복합형 정원의 모델로 주목받는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적 가드닝의 실험이다.
맺은말
정원은 위로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 가능한 위로가 되려면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책임 없는 위로는 또 다른 착각을 낳는다.
기후위기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초래한 결과이며, 정원은 그 전환의 최전선에 있다. 정원 사회학이 말하는 ‘책임의 정원’은 식물을 기르는 손끝에서 시작해, 사회를 돌보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이제 정원을 가꾸는 일은 취미가 아니라 시민적 행위, 지구적 윤리, 사회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정원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정원은 지구를 위로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구와 함께 책임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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