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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학이 던지는 질문: 정원은 환경을 살리는가, 소비하는가

📑 목차

    정원은 언제나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정원 사회학의 시선에서 보면, 이 만남은 환경을 살리기도하고 동시에 소비하기도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원은 환경을 살리는가, 소비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됩니다.

     

    정원 사회학이 던지는 질문 정원은 환경을 살리는가, 소비하는가

     

    정원사회학이 보는 정원은 자연이 아닌 사회적 장치

    정원사회학이 말하는 정원은 단지 나무와 꽃이 모인 공간이 아니라,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거울’이다. 정원은 자연 그 자체라기보다 자연을 선별하고 편집하며 연출해 놓은 풍경이다. 어떤 종은 선택되고 어떤 종은 제거되는데, 이 선택과 배제의 기준에는 계급과 취향, 유행과 국가 정책, 자본 논리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정원은 인간과 자연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는가를 시각화한 구조이기도 하다. 이 관점에 서면 정원은 언제나 두 얼굴을 지니게 된다. 하나는 환경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을 소비하고 소모하는 장치로서의 얼굴이다.

     

     

    정원사회학이 묻는 불편한 진실은 정원도 자연을 소비한다

    겉으로 보기엔 푸르고 생기 넘치는 정원이 왜 환경을 소비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정원사회학은 그 길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자원과 권력을 추적한다. 수입종이나 희귀종 중심의 이국적정원은 긴 운송 거리와 온실 재배, 냉난방 시설에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렇게 식물 한 포기가 심기기 전 이미 상당한 탄소가 배출됩니다. 사철 푸르게 유지되는 잔디정원은 관수와 제초제, 비료, 잔디 깎기 기계 사용을 통해 물과 에너지, 화학물질을 계속 소비한다. 소리를 지우고 냄새를 지우며 생태적 다양성 대신 매끈한 표면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도시 고급주거단지의 쇼 가든은 짧은 기간 화려한 장면을 연출한 뒤 대량의 식재와 자재가 교체·폐기되는 순환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원은 우리가 직접 체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토양과 물, 에너지, 생물다양성을 계속해서 소비할 수 있다. 정원사회학의 질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한다고 믿는 바로 그 방식이, 사실은 자연을 가장 세련되게 소비하는 방식은 아닌가?”

     

    정원사회학과 환경 감수성은 ‘좋아한다에서 책임진다

    정원사회학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 애호가의 감정이 아니라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의 윤리이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바로 환경 감수성이다. 환경 감수성은 자연을 보고 감동받는 능력만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정원이 어떤 자원과 생태를 쓰고 누구에게 부담을 전가하는가를 상상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다. 정원사회학은 감수성을 세 층위로 나누어 본다. 첫째는 정원이 환경에 미치는 숨은 영향을 보려는 눈인 인식이다. 둘째는 물 절약과 토착 식물, 화학물질 최소화 같은 구체적 선택인 실천이다. 셋째는 나만의 정원을 넘어 동네와 도시의 생태계까지 함께 본다는 관점인 공공성이다. 여기서 전환의 핵심은 정원을 좋아한다에서 정원을 책임진다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전환이 일어날 때 정원은 단순 취미를 넘어 환경을 살리는 일상의 인프라가 된다.

     

    정원사회학이 보는 첫 번째 사례 : 잔디정원과 기후위기의 역설

    기후위기 논의에서 자주 지적되는 대표적인 소비형 정원이 광활한 잔디정원이다. 특히 북미와 유럽, 그리고 한국의 고급 단독주택 문화에서 잔디는 여전히 관리된 자연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잔디는 일정한 길이와 색을 유지하기 위해 잦은 깎기와 대량 관수, 비료·제초제가 필요하다.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보면 잔디밭은 단일종 우세 구조를 만들며 곤충·야생화·토양 생명체의 다양성을 크게 줄인다. 기후위기 시대 물 부족 지역에서 광범위한 잔디 관수는 지역 공동체의 물 사용 구조에 큰 부담을 준다. 정원사회학은 이런 잔디문화를 단순한 미적 취향으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은 깔끔하게 통제돼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과 관리된 풍경이 곧 중산층/상류층의 상징이라는 계급적 기호가 겹쳐진 결과로 읽는다. 결과적으로 잔디정원은 환경을 살리기보다 기후위기를 강화하는 소비형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정원사회학이 보는 두번째 사례: 공동체정원, 소비에서 공공 생태

    반대로 정원을 통해 환경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관찰된다. 정원사회학은 특히 공동체정원을 중요한 사례로 주목한다. 도시의 빈터나 옛 주차장, 버려진 골목을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 쓰는 텃밭·꽃밭으로 바꾸는 시도는 토양 회복과 도시열섬 완화, 빗물 침투에 기여한다. 이 정원들은 수확을 나누는 경제적 기능뿐 아니라 기후위기와 식량체계, 생물다양성에 대한 시민 학습의 현장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원을 꾸미는 노동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네 주민이 함께 나누는 공동의 돌봄 행위로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이때 정원은 더 이상 소수의 소유자가 보여주기식으로 소비하는 사적 풍경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삶의 질과 환경을 함께 개선해 가는 공공적 생태 인프라가 된다. 정원사회학은 이런 정원에서 환경을 살리는 정원의 사회적 모델을 읽어낸다.

    정원사회학이 보는 세번째 사례: 유산정원의 기후 적응과 기억의 재구성

    역사적 정원, 궁궐 후원, 고택 정원 같은 정원문화유산도 정원사회학에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이 공간들은 기후위기 이전 시대의 조경 감각과 물·식생·미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정원문화유산은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폭우·신종 병해충에 시달리면서 기존 수종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때 선택지는 단순 복원(과거의 수종·형태를 그대로 유지)과 기후 적응(새로운 수종·관리 방식 도입) 사이에서 갈라진다. 일부 프로젝트는 우선 나무와 토양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과감히 새로운 기후 적응 수종을 도입하면서도 정원의 역사적 의미를 해석과 스토리텔링으로 이어가려는 시도를 한다. 정원사회학의 시선에서 보면 이는 정원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진다. 풍경의 외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 정원이 담고 있던 공존의 철학을 오늘의 기후위기 조건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이 고민 속에서 정원문화유산은 환경을 소비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환경을 살리는 미래형 학습장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품게 된다.

     

    정원사회학이 보는 네번째 사례: ‘플랜테리어와 인스타그램의 정원

    최근 몇 년간 식물과 정원 이미지는 SNS와 결합해 강력한 소비 아이템이 되었다. ‘플랜테리어열풍과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식물 사진, 정원 박람회의 포토존 정원은 그 전형이다. 희귀 수입 식물과 큰 잎 열대종, 특정 브랜드 화분은 짧은 시간 안에 ‘인증샷’‘인증숏’을 위한 소품으로 소비된 뒤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SNS에 잘 나오는 색감·구도·식재 패턴이 중요해지면서 식물의 생태적 적합성보다 찍기 좋은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정원박람회나 쇼 가든에서 사용된 대량의 식재·자재가 행사가 끝난 뒤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종종 가려진 영역이다. 정원사회학은 이 현상을 정원이 이미지로서 소비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때 식물은 생명체라기보다 계절 유행과 SNS 트렌드를 따라 교체 가능한 상품이 된다. 이런 정원은 환경을 살리기보다 자연을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 소비재로 전환한다.

    정원사회학이 제안하는 첫 번째 원칙: 토착성, 순환, 절제

    그렇다면 정원사회학은 어떤 정원 원칙을 제안할 수 있을까? “환경을 살리는 정원으로의 전환을 위해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는 토착성과 순환, 절제이다. 토착성은 그 지역 기후와 토양에 맞는 식물, 그 지역의 생태 기억을 품은 수종을 우선한다. 이들은 적은 물과 에너지로도 잘 자라며 지역 곤충··흙 생명과 잘 어울린다. 순환은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고 정원 폐기물을 퇴비화하며 플라스틱·일회용 자재 사용을 줄인다. 정원 자체가 작은 순환 시스템이 되도록 설계한다. 절제는 더 많이, 더 화려하게가 아니라 덜 하지만 오래, 깊게를 지향한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은 야생성을 일정 부분 허용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한 기술적 지침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생활 방식과 감수성의 전환을 요구한다.

     

    정원사회학이 제안하는 두번째 원칙: 개인 정원에서 도시 인프라로

    정원사회학은 정원을 개인의 취향 공간에서 도시와 사회의 생태 인프라로 확장해서 보자고 제안한다. 이는 정원을 바라보는 스케일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아파트 단지와 학교, 병원, 도서관의 정원은 미적 경관을 넘어 폭염 완화·빗물 관리·야생동물 서식처·심리 치유 공간으로 설계될 수 있다. 도로변 화단과 중앙분리대, 골목 화단도 나무와 풀을 심는 방식에 따라 도시 전체 생태 네트워크의 중요한 연결 통로가 된다. 특히 공동체정원과 마을 숲, 시민정원사 프로그램은 정원 돌봄을 공공의 책임과 시민 참여로 나누어 정원과 민주주의, 정원과 환경교육을 함께 엮어 낸다. 이러한 시각에서 정원을 설계하고 운영할 때 정원은 더 이상 환경을 소비하는 사적 장식이 아니라 도시를 지탱하는 사회-생태 시스템의 시작이 된다.

     

    정원사회학이 던지는 핵심 질문: 당신의 정원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결국 정원사회학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날카롭다. 그 정원은 얼마나 많은 자원을 가져와 쓰고 있는가? 그 정원은 누구에게 혜택을 주고 누구에게 부담을 전가하는가? 그 정원은 어떤 생명을 초대하고 어떤 생명을 내쫓는가? 그 정원은 자연을 살리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자연을 세련되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한 사람의 정원과 한 동네의 화단, 한 도시의 공원이 모두 다시 읽힌다. 기후위기 시대 정원을 가꾸는 일은 더 이상 취미나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윤리적 선택이 된다.

     

     

    맺음말

    정원은 여전히 매혹적인 공간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이 함께 숨 쉬는 가장 가까운 자연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매혹 뒤에 있는 소비의 구조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원을 사랑한다는 말로 자연을 소모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정원사회학은 그래서 말한다. 정원은 환경을 살릴 수도 있고 소비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감수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정원을 대하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당신의 정원은 지금 환경을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소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붙들고 정원을 다시 설계하는 순간 비로소 정원은 기후위기 시대의 위로를 넘어 함께 살아갈 미래를 실험하는 작은 사회적 연구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