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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사회, 사람이 자라는 공간

📑 목차

    정원을 가꾸는 일은 흙과 식물을 돌보는 행위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를 잇는 보이지 않는 그물을 짜는 과정이다. 정원 사회라는 관점에서 보면, 작은 화단 하나에도 규칙·역할·감정·갈등·화해가 모두 들어 있다. 이 글에서는 정원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원이 어떻게 관계를 만들고 공동체를 재구성하는지 살펴본다.

     

    정원 사회, 사람이 자라는 공간
    정원 사회, 사람이 자라는 공간

     

     

    혼자부터 함께까지: 개인의 취미가 정원 사회를 여는 순간

    도시의 베란다에서 시작한 작은 화분 하나가 정원 사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키우기 시작한 반려식물이, 이웃과 경험을 나누는 계기가 되면서 관계망이 만들어진다. SNS에 올린 베란다 정원 사진에 이웃이 댓글을 달고, 화분 흙을 어디서 샀는지, 어떤 비료가 좋은지 묻는 순간, 일상은 정원 사회의 첫 관문을 통과한다.

     

    서울의 한 1인 가구 청년은 베란다에 허브 몇 포기를 키우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과 씨앗을 나누는 소규모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점점 커져, 같은 동 아이들과 함께 상추·토마토를 심는 작은 정원 사회로 발전했다.

     

    도쿄의 실내 가드닝 동호회에서는 직장인들이 주 1회 모여 경험과 실패담을 공유하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관계는 회사·학교 바깥의 느슨한 정원 사회를 형성한다.

     

    개인의 취미로 출발한 가드닝이 정원 사회로 확장되는 지점에는 늘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다. 식물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그 변화를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고립된 개인은 정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다.

     

     

    공동체 정원과 정원 사회: 흙 위에서 다시 만나는 이웃들

    공동체 정원은 정원 사회라는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실이다. 놀이터 옆 공터, 아파트 단지 주변의 빈 땅, 도심의 유휴부지가 텃밭과 정원으로 전환될 때, 주민들은 새로운 정원 사회의 규칙과 문화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독일 베를린의 도시공동체 정원 프린체신엔가르텐에서는, 이동식 화분과 나무 상자를 활용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원 사회가 운영된다. 자원봉사자는 주당 몇 시간씩 정원 일을 돕고, 수확물 일부를 카페에서 판매해 운영비로 사용한다. 이 정원 사회에서는 나이·국적·직업을 묻기보다, 오늘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는지가 관계의 기준이 된다.

     

    국내에서도 마을정원, 마을텃밭 사업을 통해 정원 사회가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구도심의 마을정원 프로젝트에서는, 청소만 하던 골목에 화단을 만들고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관리하는 정원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이전에는 서로 인사도 하지 않던 이웃들이 이름을 알고 가족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공동체 정원의 정원 사회는 합의와 갈등조정의 과정을 포함한다. 어떤 작물을 어디에 심을지, 물은 누가 언제 줄지, 휴가철에는 어떻게 역할을 나눌지 등을 두고 회의와 논의가 이어진다. 이 과정은 민주주의를 소규모로 연습하는 정원 사회의 정치학이기도 하다.

     

     

    세대를 잇는 정원 사회: 아이와 노인이 함께 가꾸는 시간

    정원 사회는 세대 간 연결의 무대이기도 하다. 정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이와 노인은, 가정이나 학교보다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식물을 매개로 한 정원 사회는 말이 서툰 세대 간에도 자연스럽게 소통을 만들어낸다.

     

    유럽의 한 복지국에서는 노인요양시설과 유치원을 정원으로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이들은 정원 사회의 막내 구성원으로 흙을 만지고 씨앗을 뿌리고, 노인들은 정원 사회의 기억 담당자로 옛 농사 이야기나 꽃 이름을 들려준다. 아이의 호기심과 노인의 경험이 정원 사회 안에서 교환되면서, 세대 갈등 대신 세대 공감이 자란다.

     

    한국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세대공감 정원프로젝트를 통해 어르신과 청소년이 함께 텃밭을 가꾸는 정원 사회를 구성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청소년은 물 주기 알림이나 날씨 정보를 앱으로 관리하고, 어르신은 날씨에 따른 작물 관리 노하우를 알려준다. 이 정원 사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섞인 협업 구조를 보여준다.

     

    이렇듯 정원 사회는 가족이라는 좁은 단위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확장된 가족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함께 정원에서 자란 기억은,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정원 사회를 다시 찾게 만드는 중요한 정서적 기반이 된다.

     

     

    갈등과 조정의 현장으로서 정원 사회

    정원 사회가 항상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원 사회가 성숙해지는 과정에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물을 누가 더 자주 주는지, 잡초를 어떻게 관리할지, 유기농 원칙을 지킬지 여부 등 사소해 보이는 문제도 정원 사회에서는 충분히 갈등의 씨앗이 된다.

     

    어떤 공동체 텃밭에서는 일부 구성원이 화학 비료와 농약을 몰래 사용해 논쟁이 일었다. 한쪽은 정원 사회의 생산성과 외형을 중시했고, 다른 쪽은 정원 사회의 생태적 원칙과 교육적 가치를 중시했다. 결국 회의를 통해 공용 구역은 유기농, 개인 구역은 선택 가능이라는 절충안을 마련함으로써 정원 사회는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냈다.

     

    다른 사례로, 도시 외곽 소규모 정원 사회에서는 수확 분배 방식을 두고 갈등이 생겼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과,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공동체 혜택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정원 사회 구성원들은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기본 분배량과 추가 노동에 따른 보너스를 병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정원 사회는 협력만이 아니라 갈등·조정·규칙 형성의 과정까지 포함한다. 중요한 점은, 정원 사회에서는 이 모든 논의가 식물을 잘 키우기라는 공유된 목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 목표가 있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도 생긴다. 정원 사회는 일상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살아 움직이는 장이다.

     

     

    도시 재생과 정원 사회: 공간을 바꾸며 관계를 바꾸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서 정원 사회는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바꾸는 핵심 요소로 등장한다. 오래된 공장, 버려진 철길, 폐교 부지 같은 곳이 정원으로 재탄생할 때, 그 주변에는 새로운 정원 사회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독일에서 폐철길을 녹지로 바꾼 사례처럼, 일부 도시에서는 오래된 주차장을 임시 정원 사회의 거점으로 활용한다. 일정 기간 컨테이너 박스와 이동식 화분을 배치해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정원 사회를 시험 운영한 후, 반응이 좋으면 장기 프로젝트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상인, 청년 예술가, 주민 단체가 정원 사회의 파트너가 된다.

     

    국내에서도 오래된 시장 인근에 작은 포켓정원을 조성해 시장 상인과 주민이 함께 가꾸는 정원 사회가 만들어진 사례가 있다. 이전에는 단순한 상호 거래관계에 머물던 상인과 주민이, 정원 사회 안에서는 함께 책임과 즐거움을 나누는 협력 관계로 변한다. 정원 사회가 도시의 경직된 관계를 완화하는 셈이다.

     

    정원 사회는 도시 재생을 단순한 물리적 환경 정비에서, 관계 재생과 공동체 회복을 포함한 과정으로 확장시킨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변화가, 흙과 식물을 매개로 한 정원 사회를 통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디지털 시대의 정원 사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네트워크

    디지털 기술은 정원 사회의 범위를 물리적 장소 바깥으로 확장한다. 이제 정원 사회는 한 동네나 한 도시를 넘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의 정원 가꾸는 사람들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온라인 카페나 SNS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원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도시·국가에 있는 사람들이 토양, 기후, 품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자신의 정원 사회를 보여주고, 다른 지역의 정원 사회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한다.

     

    ,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정원 교육이나 워크숍이 열리면서, 정원 사회의 지식과 기술이 빠르게 순환한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의 공동체 정원 사회에서 성공한 주민 참여 설계 워크숍방식이 다른 나라의 정원 사회에서 그대로 응용되는 식이다.

     

    이런 디지털 정원 사회는 물리적으로 정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참여의 통로를 제공한다. 장애인, 고령자, 재택근무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사람들도 온라인 정원 사회를 통해 소속감과 정보를 얻고, 가능하다면 가까운 실제 정원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다.

     

     

    정원 사회의 포용성: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 만들기

    정원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 문화, 경제적 조건, 신체 조건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도시의 정원 사회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구역을 따로 마련해, 각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정원 사회에서는 한 구역에 한국의 들깨, 다른 구역에 중동의 허브, 또 다른 구역에 남미의 옥수수가 심어진다. 서로의 먹거리와 기억이 뒤섞이며, 정원 사회는 다문화 지도가 된다.

     

    또 다른 정원 사회에서는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화단 높이 조정, 점자 안내판, 쉬운 언어로 쓰인 안내문 등을 통해 장애인과 고령자의 참여를 보장한다. 이처럼 정원 사회는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할 때, 진정한 모두의 정원 사회가 된다.

     

    포용적인 정원 사회는 단지 참여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그 경험은 다른 사회 영역예를 들어 학교, 직장, 지역 정치에서도 다양성과 공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정원 사회가 남기는 것: 관계의 구조, 삶의 태도

    정원 사회를 한동안 경험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변화를 이야기한다. 첫째,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만해진다. 식물이 자라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정원 사회 구성원도 서로에게 시간을 주는 태도를 배우기 때문이다. 둘째, 실패와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힘이 생긴다. 아무리 잘 준비해도 날씨, 병충해, 토양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계속 경험하면, 정원 사회의 구성원은 완벽한 통제대신 유연한 대응을 중시하게 된다.

     

    정원 사회는 이렇게 개인의 심리적 습관과 사회적 태도를 함께 바꾼다. 흙과 식물, 사람과 규칙이 어우러진 정원 사회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작은 규모에서 미리 실험해 보는 장이기도 하다.

     

    정원 사회라는 렌즈로 정원을 바라보면, 꽃과 나무 사이에 사람들의 표정과 대화, 갈등과 타협, 웃음과 한숨이 함께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결국 관계를 가꾸고, 공동체를 가꾸며, 조금씩 다른 형태의 정원 사회를 만들어 간다. 그 다양한 정원 사회의 이야기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힌트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